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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世說)] 만취 음주운전자 강제채혈 불가피하다

중앙일보 2011.06.27 00:17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경수
경찰교육원 교수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음주운전은 특정 개인에게 국한되기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사회 구성원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음주운전은 예정된 자살행위이며 타인의 생명도 빼앗아 버릴 수 있는 일종의 살인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엄청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음주운전자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처벌, 그리고 철저한 증거 수집이 필요하다.



 지난달 대법원은 법원으로부터 영장 또는 감정처분허가장을 받지 아니한 채 술에 취해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피의자의 동의 없이 혈액을 채취하고 사후적으로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채혈한 혈액 중 일부를 감정하였다면, 그 혈액에 기초한 감정결과보고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는 수사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혈중 알코올 농도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희석되므로 이른 시간 내에 채혈을 하지 않으면 증거 수집이 실패로 돌아갈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럼에도 강제채혈을 위해 영장만을 고집하게 된다면 수사기관의 실체적 진실발견 의무는 제대로 이행되기 어렵다. 결국 교통사고 현장에서 조사를 하는 수사관들은 위법한 증거 수집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교통사고 현장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음주운전자에 대해선 그의 동의를 받을 수도 없다. 교통사고 수사관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형사소송법 제216조 제3항은 범행 중 또는 범행 직후의 장소에서 영장 없이 압수수색검증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후송된 병원은 시간적 접착성 등이 인정되지 않아 범행 장소가 아니라는 비판이 있고, 그런 비판적 견지에서 보면 요건 불비로 사후에 영장을 받을 수도 없다. 결국 적법하게 증거 수집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는 셈이다.



 음주운전의 사회적 폐해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음주운전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은 당연하다. 따라서 시간 경과에 따라 알코올 성분이 희석된다는 긴급성을 고려해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영장 없는 채혈이 가능하도록 입법화할 필요성이 있다. 만약 입법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교통사고 수사관들의 강제채혈은 계속해서 위법수사로 간주되고, 수사관들은 하나 둘씩 교통사고 현장을 떠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경수 경찰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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