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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라

중앙일보 2011.06.27 00:12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우리가 승부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규칙을 지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승부가 위대해서다. 여기에는 패자가 없다. 모두 승자다. 1974년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열린 조지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의 세계 헤비급 타이틀 매치. 가공할 펀치력의 포먼은 7회까지 알리를 몰아붙였다. 점수만 잘 관리하면 판정승은 확실했다. 하지만 포먼은 쉬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그러다 지쳤다. 8회 종반 알리의 전광석화 같은 펀치가 포먼의 얼굴에 꽂혔다. 알리는 챔피언에 등극했다. 포먼은 위대한 복서가 됐다. 정정당당한 승부는 이렇게 영웅을 만든다.



 스포츠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린 건 지금 서울에서 벌어지는 묘한 승부 때문이다. 링 위에서 공은 울렸는데 한 선수는 싸울 생각을 안 한다. 상대방이 펀치를 날려도 도망만 가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렇게 버텨 마지막 라운드가 끝나면 판정도 하지 않고 뒷걸음질 친 선수가 이기게 된다.



 이런 이상한 게임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민투표의 화두를 ‘서민 무상급식이냐, 부자 무상급식이냐’로 던지고 배수진을 쳤다. 이 정도면 초반부터 분위기가 뜨거워져야 한다. 이미 서울시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밀어붙여 전면 무상급식(대다수 초등학교 1~4학년생)이 시작됐다. 이를 부정하는 오 시장의 승부수에 맞서 민주당은 강하게 맞불을 놓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잠잠하다.



 그 속내가 당당하지 않다. 핵심은 투표율이다. 투표율이 유권자의 3분의 1에 못 미치면 오 시장의 패배다. 주민투표법 24조는 애매모호하다. 투표율이 33.3%에 미달하면 ‘양자택일 사항 모두를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돼 있다. 이걸 법제처가 정리했다. ‘시의회가 조례로 정하고, 예산이 편성된 사업은 투표율이 미달돼도 그대로 진행한다.’ 민주당이 주민투표를 전략적으로 무시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굳이 오 시장과 공방을 벌여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런 전략, 꼼수다. 주민투표가 뭔가.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정책을 스스로 선택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무시로 일관한다면 이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야당은 가난한 학생에게만 공짜 점심을 주면 학생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산도 4대 강 사업 같은 토목공사비를 줄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논리, 자신 있다면 떳떳이 나서야 한다. 시민들이 투표장에 나와 민주당 안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투표 불참을 유도하는 건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꼴이다. 투표율이 미달한다고 민주당이 이긴 게 아니다. 앞으로 모든 주민투표가 이렇게 무력화될 수 있다. 이건 모두 지는 길이다. 그나마 오 시장은 신념을 지킨 정치인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직접민주주의에 대못을 박은 죄인으로 전락할 것이다.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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