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미봉책<彌縫策>

중앙일보 2011.06.22 00:17 종합 35면 지면보기








소크라테스는 논쟁의 달인이었다. 문답 형식으로 상대를 자기모순에 빠지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성찰하게 만든다. 바로 ‘산파술’이다. 인간이 아는 것은 오직 ‘모른다’는 사실뿐이다.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의 함의(含意)다. 하지만 변론의 귀재 소크라테스도 ‘악법(惡法)도 법’이라며 죽음의 독배를 피하지 못한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설득의 달인이었다. 전국시대 강력한 진(秦)에 맞서 초·연·제·한·위·조 6국이 동맹을 맺도록 한 것이 소진의 ‘합종(合從)’이다. 그런데 이를 깨고 6국이 각각 진(秦)과 횡적 동맹을 맺게 한 것이 장의의 연횡(連衡)이다. 서로 창과 방패, 모순(矛盾)의 논리를 편 셈이다. 서양식 접근으로는 ‘통일전선’과 ‘분할통치’의 대결이다. 역사는 변증법이 그렇듯이 ‘합(合)’으로 귀결됐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합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토론의 달인이었다. 저서 『토론의 법칙』에서 논쟁과 토론에서 이기는 38가지 기술을 제시한다. 강하게 공격하려면 “자신의 권위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더불어 ‘예’라는 대답을 얻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라고 한다. 반박 기술로 “상대방 주장을 최대한 넓게 해석해서 과장하라”고 한다. 위기에 빠지면 “이론상으로는 맞지만 실제는 다르다”고 억지를 쓰며, 그래도 안 되면 “인신공격을 하라”고 한다.



 최근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서로 논쟁과 토론, 설득전을 펼치다 높은 분 한마디에 어정쩡하게 봉합된 모양새다. 그런데 검찰의 전략이 어쩐지 쇼펜하우어와 닮았다. 기득권 활용이나 현실론, 인권보호와 자질론을 내세운 우회적 인신공격까지. 더욱이 ‘예’와 ‘아니요’로만 대답하도록 하며 허점을 짚는 것은 검찰의 전문분야 아닌가.



 그런 점에서 서강대 손호철 교수의 통찰이 번뜩인다. “검찰의 탐욕을 경찰의 탐욕으로, 경찰의 탐욕을 검찰의 탐욕으로 견제하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권은 미봉책(彌縫策)을 택했다. 임시변통으로 적당히 꿰맨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만년에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 여덟 자를 병풍에 썼다. 낡은 습관을 따르고 편안함만 좇으면서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고 임시변통으로 둘러댄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천하만사가 이로부터 잘못된다”고 경계했다. ‘미봉(彌縫)’이 ‘책(策)’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박종권 선임기자·논설위원



▶ [분수대] 더 보기

▶ [한·영 대역] 보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