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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역하다 눈 먼 아버지의 한, 아들의 역사 혼을 깨우다

중앙선데이 2011.06.19 00:03 223호 29면 지면보기
“아들아, 내가 살았던 세상은 컴컴하고 음습한 땅굴 요새였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때 우리 제주도를 저들의 군사기지로 만들었단다. 일본군에게 끌려간 나는 두더지처럼 밤낮 땅굴을 팠지. 그러다 그만 눈이 멀어갔다. 아들아, 바라건대 너는 이 못난 아비가 살았던 그런 세상을 살지 마라.”

사색이 머무는 공간 <64> 제주도 전쟁역사평화박물관(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

아들은 눈먼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일을 못하는 아버지는 가난했고 아들은 중학교 진학조차 하지 못했다. 뒤늦게 학교의 잡일을 해주며 중학교를 마쳤다. 모슬포까지 나뭇짐을 져 날랐다. 등이 까지고 어깨가 결렸다. 어렵사리 화물차를 장만한 아들은 집안을 일궜다.

어느 날 아들은 가마오름 동굴을 찾아 들어갔다. 가마솥 모양의 산 속에는 거미줄 같은 지하세계가 뒤엉켜 있었다. 아들은 이 동굴진지에서 젊은 날의 아버지를 만났다. 거친 주먹밥 한 덩이로 연명하며 곡괭이로 땅굴을 파는 조선인 노무자들은 짐승 취급을 받았다. 눈물이 솟구쳤다. 눈 멀고 가난한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겼던 자신을 책망했다.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무 죄 없는 아버지는 광란의 전쟁이 낳은 희생자일 뿐이었다. 아들은 아버지가 알았던 것,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걸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가산을 정리해 아버지의 노역 현장을 사들였다. 그리고 10여 년을 매달려 동굴진지 체험학습장을 만들고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박물관을 열었다. 빚이 쌓여갔고 사람들은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재발견한 아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일본인 관람객 “태평양전쟁은 바보짓”

평화란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얻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이영근 관장. 신동연 기자
지난해 그는 아버지의 노역 현장에서 30만9000명의 관람객과 만났다. 500개 학교 학생들이 견학 왔고 일본인들까지 찾아와 “태평양전쟁은 무모한 전쟁이었고 바보짓이었다”는 감상문을 남겼다. 작년에 아버지는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아들은 오늘도 가마오름에서 아버지를 느끼며 방문객들을 안내한다. 아버지 이야기를 곁들인 그의 명쾌한 해설은 감동을 자아낸다.

전쟁역사평화박물관 이영근(58) 관장의 휴먼스토리에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 서려 있다. 1945년 2월, 일제는 제주도에서 ‘결호작전(決號作戰)’을 수행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오키나와 등 일본 6개 지역 외에 제주도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미군 상륙 지점으로 예상되었던 제주도 모슬포 일대를 요새화하고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였다.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었다. 제111사단, 108여단 등 모두 7만 5000여 명의 병력을 두었다. 당시 제주도 인구는 21만여 명 정도였다. 일본군은 이미 1940년대 초에 조선인 노무자들을 징집해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배치해 미군과의 결전에 대비했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37년 중국 대륙까지 진출한다. 상하이와 난징 등을 폭격할 수 있도록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일본 해군 비행장(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했다. 1944년 봄부터 미군 잠수함이 일본 근해에 진출했다. 일제의 수송선들이 격침되었다.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서의 물자 수송이 어렵게 되자 새로운 보급기지가 절실해졌다.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일본의 규슈 지방과 중국 남부, 필리핀과 한반도 사이에 놓여 있어 군사전략적인 요충지로 손꼽힌다. 그들은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 해안의 공유수면 절벽에 해안동굴진지를 구축했다. 가미카제(神風) 공격용 비행기가 배치된 알뜨르 비행장과 함께 자살특공대가 배치되었다.

세계자연유산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모두 368개의 기생화산인 오름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오동통하고 정겨운 오름들이다. 그런데 무려 120개나 되는 오름에 일본군 땅굴기지가 있다. 놀라운 일이다. 관심을 갖지 않고 보면 그저 평화롭기만 한 지역에 벌집 같은 요새들이 숨어 있다. 바닷가로 풀어진 올레 길을 걷고 유채꽃과 억새밭 등 빼어난 풍광을 쫓는 여행자들이 놓치기 쉬운 근현대사의 그늘이다.

바람 타는 섬 제주도에 새로운 기행 바람이 일고 있다.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을 속속들이 찾아 다니며 토론하고 기록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풍경 구경 단계를 넘어선 시민들이 역사교훈 여행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뿐만 아니라 동호회나 가족 단위로 찾기도 한다.

야트막한 가마오름 기슭 전쟁역사평화박물관 전시관 안으로 들어선다. 태평양전쟁 때 사용했던 각종 유물들 가운데 한반도와 중국 대륙 일부를 삼킨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지도와 키 작은 중학생 교복만 한 일본군 군복이 시선을 끈다. 섬뜩한 한편 어처구니없다.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35년간이나 일제 치하에서 고통을 받았다. 지난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은 1930~40년대 중반까지 동아시아와 태평양 일대에서 거침없는 망상을 드러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숱한 죽음을 불러왔고 그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이다. 해방은 곧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다. 동족 살육도 모자라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광목천 소감문, 155마일 될 때까지 모을 것
전시관에는 한국전쟁 유물들도 함께 진열해 놓았다. 한국전쟁 때 제주도민 3000명이 해병대에 지원했다. 그 가운데 126명이 여군인데 교사 등 엘리트 여성들이 많았다고 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제주도민들이 보여준 결기는 눈물겹다. 그 무렵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한 희생자를 냈던 제주 4·3사건의 상처가 떠오른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수거한 불발탄 2발도 유리관 안에 전시돼 있다. 찢겨진 폭탄을 대하는 관람객들의 눈빛이 떨린다. 충격이다. 그렇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망령된 태평양전쟁도, 휴전 상태인 한국전쟁도 우리 안에 이렇게 틈입(闖入)해 들어와 있다.

이 관장을 따라 땅굴진지로 향한다. 왼편 개활지에 한국전 참전국 국기들로 만든 6·25 표지가 보인다. 드디어 땅굴 입구 앞에 선다. 판자로 갱도를 만들었다. 이 관장의 아버지 고 이성찬씨를 비롯한 한국인 노무자들은 이 음산한 지하의 어둠 속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삽과 곡괭이로 동굴을 파 들어갔다. 동굴 벽 군데군데 등잔이 올려져 있다.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곡괭이질을 하는 노무자들은 흙 묻은 옷으로 비지땀을 닦아냈다. 눈이 짓물렀다.

높이 1.6~2m, 너비 1.5~3m의 갱도가 구불구불 이어졌다. 평균 섭씨 17도를 유지하고 있는 땅굴 내부엔 숙소, 의무실, 회의실, 사령관실 등이 괴기스럽게 들어서있다. 포신이 4m가 넘는 대공포와 탱크가 드나들던 동굴도 있다. 인간의 망상은 벌레의 생태학까지 모방한다.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안경을 끼고서 서류를 보고 있는 사령관 모형물을 주시한다. 이 지하요새에서 호모사피엔스의 가소로운 지능과 눈먼 이성을 조롱한다. 밝은 태양 아래서 당당한 삶을 구가하지 못하고 벌레처럼 땅굴을 파고 들어앉아 전쟁과 죽음을 연구하는 무리들. 인류사가 광기의 역사였음을 알려준다.

땅굴을 나와 햇빛을 본다. 인간은 결코 벌레일 수 없다. 모두 1200명을 수용하는 영상관에는 체험 소감을 적는 광목천이 비치돼 있다.

“이 진지 소속이었던 일본인들이 넷이나 왔습니다. 전시관에서 수류탄을 보고 눈물을 흘리더군요. 자살용 수류탄이라는 거였어요. 광목천에 반성하는 내용의 소감을 적는 일본인들도 있습니다. 2008년부터 광목천에 소감을 받았어요. 현재 5㎞ 정도지만 155마일 휴전선 길이만큼 받을 생각입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이 광목천으로 전쟁의 상처를 덮어야죠.”

이 관장은 박물관을 세우느라 건축허가를 받는 데만 꼬박 2년 반이나 걸렸다고 한다. 개인이 전쟁박물관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던지 그때 흰머리가 생기고 치아가 빠졌단다. 하지만 여전히 열정적이고 진실이 담긴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꿈이 있는 사람은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하는 자는 영원한 청년이다.

패망하고 돌아가는 일본군들에게 이 관장의 아버지는 사제복을 구해줬다고 한다. 1943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2년반 동안 노역의 대가로 받은 건 일본군들이 남겨놓고 간 쌀 두 말가량이었는데도 말이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그간 이 관장이 해왔다. 마이크를 잡은 이 관장은 오늘도 굵고 짧은 멘트로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땅굴진지 유적지가 그냥 묻혀버리면 어두운 역사가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평화란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얻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가마오름에 올라서 멀리 태평양을 바라본다. 제주도는 주역의 마지막 괘인 미제(未濟)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땅이다. 초난종길(初難終吉), 처음은 고달팠어도 나중은 크게 길한 땅이다. 태평한 큰 바다, 태평양을 향한 평화의 전진기지가 미래의 제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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