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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소장의 한국 자동차 비사 秘史] ④ 왕실과 귀족의 자동차 바람

중앙일보 2011.06.17 02:30 주말섹션 7면 지면보기



드라이브 즐긴 의친왕 “저 어여쁜 여인 좀 따라가 보게”



1915년을 즈음해 왕실에 자동차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덕수궁 석조전 앞에 왕실 차량이 주차돼 있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1915년 즈음해서 왕실에 자동차 바람이 불었다. 한편으로는 원망의 소리가 높았지만 자동차는 계속 불어났다. 자동차의 본고장인 유럽이나 일본이 그랬듯이 초기의 자동차는 왕족이나 귀족, 부호들의 노리개 감으로 시작됐다.



 고종·순종·황후에 이어 자동차 바람은 왕자들에게도 불었다. 왕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자가용을 가졌던 이는 바로 의친왕이다. 그는 미국산 오버랜드를 보유해 타고 다녔다. 영선군은 미국산인 쉐보레를 자가용으로 택했다.



 이어 해풍부원군 윤택영, 총리대신 이완용, 내무대신 박용호, 윤택영의 둘째 형인 윤덕영 등 왕실의 측근이나 대신들이 자동차를 타기 시작했다. 총독부의 2인자였던 정무총감, 조선군 사령관, 일본군 19사단장, 그리고 외국인 선교사들이 뒤를 이었다.



 이들이 탔던 초기의 자동차는 미국제와 영국제가 주를 이뤘는데 그중 미국산 자동차가 가장 많았다. 값이 제일 쌌던 포드가 당시 돈으로 4000원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니에 6, 7원 할 때였으니 쌀 7000가마니 값이다. 지금도 보존돼 있는 순종의 캐딜락은 당시 1만원으로 최고급차였다. 당시에 조선인 운전사가 없어 왕실의 자동차 운전사는 모두 일본에서 일본인 혹은 동포를 데려와 고용했다.



  “윤씨.”



  “예, 전하.”



  “저 앞에 오는 여인네가 미인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예, 전하. 잘 보셨습니다. 어느 사대부집 규수 같습니다요.”



 “차를 돌리게.”



 “아니, 전하. 무엇을 하시려구요. 장충단으로 행차하신다고 분부 놓지 않으셨습니까요.”



 “어허, 군소리가 많네. 저 여인 슬금슬금 따라가세. 내 미인 감상 한번 해야겠네.”



  이 왕자님 또 한량기가 동하신 모양인데, 특히 고종의 다섯째 왕자 의친왕은 한시도 쉬지 않고 자동차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는 또 장난기와 짓궂은 데가 있어 자동차 때문에 심심찮은 말썽거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서울 장안의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친왕은 미국에서 유학해 왕실 중에서 신문학을 가장 먼저 배웠다.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해 서구 문명을 먼저 체험해 개화에 앞장섰던 당대 지식인이었다. 동시에 멋쟁이 한량이었다. 그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전에 나타난 신식 탈것인 자전거, 인력거, 서양 마차도 먼저 탔다. 그런데 자전거 매니어로 유명했다고 한다.



 의친왕은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지나가는 여인들을 감상하기 좋아했다.



좀 예쁘다 싶으면 차를 여인네 옆으로 갖다 대고는 천천히 몰게 해 따라가며 인물 감상을 했다. 그래서 여인들은 혼비백산해 골목으로 달아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의친왕은 고종의 왕자들 중에서 항일사상이 가장 투철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의 신분으로 드러내놓고 항일운동을 할 수 없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을 한탄했다. 그런 울분을 기행으로 달랬다는 뒷얘기가 있다.



앞서 의친왕의 자가용 오버랜드 차량을 운전한 사람은 최초의 우리 동포 운전사 윤권씨였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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