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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외나무다리 저 너머엔, 별천지 무섬마을

중앙일보 2011.06.17 02:00 Week& 1면 지면보기






경북 영주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무섬을 찾는 어른·아이 모두에게 최고의 놀잇감이다. 중간에 유실된 부분은 지난 11일 보수공수를 해 현재는 모두 이어져 있다.







경북 영주시 수도리(水島里) 무섬마을. 이름은 섬이지만 섬마을은 아니다.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와 더불어 경북 지방의 대표적인 물돌이동(洞)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뜻으로 ‘물섬’으로 불리다가 무섬이 됐다.



 낭만적인 이름만큼 마을도 아름답다. 낙동강 샛강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아 돌아가고, 사행천을 따라 금빛 모래톱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모래톱 한편에는 어른 무릎까지 찰까 말까 한 얕은 물이 은하수처럼 흘러간다. 물이 모랫바닥으로 스며들어가지 않는 것은 모래 퇴적층이 8~22m에 달하기 때문이다.



 맞은편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니 풍경이 또 다르다. 물이 크게 휘감는 마을은 오목렌즈를 들이댄 것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뱀처럼 휜 물길 안으로 한옥·초가 50여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태극의 선 안에 연꽃 하나가 들어앉은 형국이다.



 무섬의 명물은 마을 이편과 저편을 잇는 외나무다리다. 금빛 모래톱과 은빛 여울에 말뚝 188개를 박고 그 위에 널판 124개를 얹었다. 1973년 콘크리트 다리가 생긴 뒤 철거된 외나무다리를 2005년 복원했다. 다리는 구불구불 곡선이다. 상판도 반듯하지 않아 뒤뚱뒤뚱 위태롭게 건너가야 한다. 그래서 더 멋스럽다. 외나무다리 한쪽 끝에 서 있으면 맞은편에서 소설 『소나기』의 소녀가 나타날 것만 같다. 예전 이 자리에 있었던 다리 이름도 몽동(夢童)골다리다. 꿈속 아이들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이리라.



 무섬의 다리는 어제와 오늘을 잇는 다리이기도 하다. 마을 주민 김한직(70)씨에게 외나무다리는 한국전쟁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대구에서 학교에 다니던 그는 할머니 댁으로 피란을 오면서 이 다리를 처음 만났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 전쟁에 나갔던 그의 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김시해(73) 할머니는 41년 전 가마를 타고 이 다리를 처음 건넜다. “친정이 안동인데, 여기에 비하면 거기는 대처라. 가마꾼한테 들려 오는데 ‘이런 깡촌에서 어찌 사나’ 생각이 들어 다시 집에 가고 싶더라고.”



 40여 년 전 무섬에는 다리가 세 개 있었다. 유년시절 고향을 떠난 뒤 6년 전 귀향했다는 김한세(72)씨는 옛 마을 풍경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몽동골다리는 일꾼들이 물 건너 논밭으로 일하러 가는 다리야.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지. 지금 마을 앞에 있는 콘크리트다리 자리에도 다리가 있었는데, 도랑나들다리라고 했어. 아침이면 아이들이 학교 가는 다리였지. 마을 뒤편에도 다리가 하나 더 있었네. 뒷나들다리라고. 영주 장날이나 나들이 갈 때 건너는 다리였지.”



 외나무다리 재건은 온전히 마을 어르신의 작품이었다. 황혼의 나이에 고향을 다시 찾은 이들이 주도해 비용을 마련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향우에게 격문을 돌려 십시일반 돈을 마련했다. 복원을 주도한 김한세씨는 “예전 외나무다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동참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하나 겨우 자리를 잡은 다리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3년이 지나면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무섬 사람들은 “댐이 생기면 강물이 줄고 모래톱에 풀이 무성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은하수 같은 물길이 야위어 도랑이 되고 나면 다리도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추억 그윽한 옛 풍경이 안타깝게도 또 하나 사라질 판이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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