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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40) 태종대의 비극

중앙일보 2011.06.17 00:45 종합 22면 지면보기



선글라스가 깨져 얼굴에 박혔다, 코도 주저앉았다



영화 ‘맨발의 청춘’(1964)에서 요안나가 뒷골목 청년 두수의 다친 손을 치료해주고 있다. 신성일은 ‘맨발의 청춘’에 이어 ‘욕망의 결산’에 출연했다가 태종대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중앙포토]





발 한 번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이다. 부산 술집을 빠져 나와 태종대에 닿았을 무렵,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술도 덜 깬 데다 날씨도 추웠다. ‘욕망의 결산’ 상대역인 김혜정이 촬영 현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김혜정이 태종대 바위 위에서 나란히 걷는 장면이었다. 뒷골목 건달 역이었기에 파일럿 점퍼에 손을 넣은 채로 카메라 테스트에 임했다. 이게 웬일! 태종대 바위는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발을 헛디뎠다. 점퍼에 넣은 손을 빼낼 겨를이 없었다. 넘어지면서 얼굴이 그대로 바위에 찍히고 말았다. 선글라스는 깨졌고, 얼굴에서 피가 넘쳐흘렀다. 누군가 수건으로 내 얼굴을 감쌌고, 바로 그 길로 똑딱선 타고 부산항으로 갔다.



 도착해 보니 부산 광복동 해돋이병원이었다. 왼쪽 눈 바로 위쪽 미간이 찢어졌다. 선글라스 조각이 그 사이로 파고든 상태였다. 코도 주저앉았다. 김혜정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의사에게 애원했다.



 “선생님, 선성일씨는 큰 인물이 될 사람입니다. 치료 잘 해 주세요.”



 눈 감고 누워있어 그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김혜정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수술은 두 시간 이상 걸렸다. ‘이제 영화배우 생활 끝났구나. 내 팔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한 번의 실수로 배우 생활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런 내 자신이 한심했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흉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가장 가는 6호실로 꿰맸다. 그러나 코는 내가 만질 수 없다”라고 말했다. 얼굴이 붓기 시작하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곧바로 열차에 실려 서울로 왔다. 임권택 감독과 제작자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내 얼굴을 본 어머니는 통곡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어머니께선 내게 거울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 주저앉은 코도 빨리 세워야 했다. 어머니가 수소문한 곳은 종로 1가의 노이비인후과였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노란 고무줄을 씌운 쇠꼬챙이를 코 속에 밀어 넣은 다음 다른 손으로 어긋난 코뼈를 맞추었다. 코에서 ‘두둑’ 소리가 나면서 막혀 있던 피가 확 쏟아졌다.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얼굴이 좀 돌아왔다. 병원에 다시 가니 의사가 손으로 코를 만져주었다. 그때 기술로는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도 내 코는 약간 비뚤어져 있고, 코를 잘못 풀면 피가 섞여 나온다.



 건강해서 그런지 회복이 빨랐다. 사건 발생 2주 만에 붕대를 풀고 바깥으로 나갓다. 영화잡지 ‘영화세계’의 시상식장이었다.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욕망의 결산’ 촬영을 재개했다. 아쉽게도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태종대 사고’는 내가 기본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났다. 배우에게 손 처리는 연기의 기본이다. 손을 못 넣게 하려고 바지주머니를 꿰맨 채 연기공부를 하던 나였다. 춥다고, 폼 잡는다고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지금은 아무리 추워도 장갑을 끼고 다닌다. 바지주머니에 절대 손을 넣지 않는다. 내 눈 위의 상처 자국은 그때의 교훈을 웅변한다. 영화계에서 쉬쉬해서 조용히 지나갔지만 말이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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