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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악마의 덫, 유혹

중앙일보 2011.06.17 00:26 종합 31면 지면보기






유재하
커뮤니케이션그룹
킬링포인트 대표




어릴 때는 과자에 흔들리고, 청춘엔 이성에 흔들리고, 한창때는 야망에 흔들리더니 늙어지면 다시 과자에 흔들린다던가. 흔들림 속에 마음 중심 잡느라 고행하는 것이 삶일지도 모르겠다. 시인 감태준은 ‘흔들릴 때마다 한잔’을 읊조렸지만 요즘같이 유혹이 난무하는 세상에선 이러다간 취중인생이 될 터. 아니 벌써 취중세상이 온 것은 아닐까. 탄식이 생활의 배경음이 돼버린 오늘이다.



 얼마 전 한 케이블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폴포츠로 화제가 된 최성봉이란 젊은이가 이후 거짓말쟁이로 오해된 일이 있었다. 다섯 살 때부터 껌을 팔며 혼자 살았다는 사연과 함께 초· 중등과정 검정고시를 통해 예고에 입학했었다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방송에선 예고입학 부분이 편집됐다. 껌 팔며 성장했고 지금은 막노동을 한다는 자신의 소개에 이어 ‘넬라판타지아’를 불렀으니 이는 측은한 맘을 반전시킨 감동의 드라마가 된 것이다. 예고 졸업 멘트를 편집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과거를 비춰볼 때 충분히 기특하고 감동적인 무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 담당자는 시청자를 한 방에 울릴 방법을 알고 있었다. 더 드라마틱해야 했다. 그 유혹에 흔들린 것이다. 후에 당사자에게 사과했다지만 참 씁쓸하다. 출연자들은 신념을 부여잡고 경쟁 공포의 흔들림을 이겨내고 있는 동안 담당자는 ‘인기 프로그램’의 유혹에 흔들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애교스러운 것이 요즘 현실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는 양파 형국이 되었다. 로비 의혹은 정부 청와대까지 번지고 있다. 기사 헤드라인만 봐도 ‘3000만원 쇼핑백 줬다’ ‘술값에 내 집 마련도 뚝딱, 저축은행은 금감원 직원 도깨비 방망이’라는 기막힌 내용 일색이다. 공직자들이 검찰청에 줄줄이 소환되더니 결국 목숨을 포기하는 이가 생겼다. 그리고 자살한 이의 유서 내용이 회자되었다. 그는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기 힘들 듯하다면서 이 모든 것이 그가 소중하게 여겨 온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그를 유혹한 ‘악마의 덫’이 ‘만남’이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시작은 목적을 갖고 전략적으로 다가온 사람과 명함을 나누며 인사하는 자리, 지인들과 함께한 식사자리였을 터다. 그만이 아니라 지금 검찰청에 소환된 많은 이가 그와 비슷한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엔 골프와 술자리가 이어지다가 봉투와 청탁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단계에서 끊어야 하는가. 첫 자리부터 사람을 가려야 한다. 권력은 돈에 흔들리고, 돈은 권력을 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싹을 없애기 위해 성남과 수원 시장은 집무실에 CCTV를 설치했다고 한다. 자신을 흔들어댈 바람 한 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갑갑한 얘기지만 공직자에게는 이런 것이 현실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실시한 마시멜로 실험을 얘기해 보자. 몇 명의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하나씩 준 다음, 15분 동안만 먹지 말고 참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잘 참은 아이에게는 15분 뒤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이 몇 명은 잘 참아서 하나 더 먹을 수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기다리지 못했다. 약 10년 후 실험에 참가한 아이들을 찾아 추적조사를 했다. 기다렸다가 마시멜로를 하나 더 먹은 학생들이 성적도 친구관계도 좋고 스트레스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들 대상 실험이라고 고개 돌릴 일이 아니다.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성공리더십의 중요 요소로 자기통제(self-regulation)능력을 꼽았다. 그는 ‘충동적인 유혹에 소신 있는 자기응답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특히 강조했으며 이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통제란 자신의 생각과 시간, 그리고 대인관계에 대한 것으로 좁혀진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삶 곳곳에 자기통제센서를 달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는 매 순간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자에, 이성에 흔들릴지언정 불순한 야망에 휘둘려 우두둑 꺾여서는 안 된다. 정권 말기, 정부와 여야는 지금 무엇에 흔들리고 있는가. 만일 내부에서 퀴퀴하고 조잡한 냄새가 풍긴다면 초여름 작열하는 햇살 아래 심신을 내다 널어보라. 태양에 그을리고 바람에 좀 나부끼면 더 건강해질지도 모르니까.



유재하 커뮤니케이션그룹 킬링포인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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