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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스승 왔다” 외국인 선수들 우르르 몰려와

중앙일보 2011.06.17 00:12 종합 28면 지면보기



중앙일보 박치문 전문기자
함부르크 ‘기도컵’대회 가보니



바둑 인구 3만 명의 독일은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가는 바둑 강국이다. 최강부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이 진지하다. [사이버오로 제공]





함부르크에 와서 맨 먼저 북해(北海)를 찾았다. 엘베강을 따라 두 시간쯤 달려가니 끝없이 펼쳐진 초지와 양떼, 그 너머로 1300㎞나 이어졌다는 갯벌이 보인다. 매년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기도컵(KIDO CUP)은 한국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대회다. 이 대회는 윤영선 8단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여류 국수를 네 번 한 시원시원한 성격의 윤영선은 연하의 잘생긴 독일 청년 라스무스 부흐만과 결혼하고 아예 함부르크에 정착한다. 영어와 독일어를 배우며 바둑을 가르치는 힘든 세월이 이어진다. 그 후 5년, 이제 윤영선은 독일 전역 서 초청 받는 최고의 바둑 전도사가 됐다. 기도컵을 만든 기도산업 박장희 회장은 바둑을 좋아하지만 바둑계와는 거리를 두었던 사람이다. 한데 어쩌다 윤영선과 인연이 닿아 순전히 윤영선을 돕기 위해 엉뚱하게도 유럽에서 바둑대회를 열게 됐고 올해가 3회째다.









어린이대회 우승자 얀(jan·20급).



 프로기사 권갑룡 8단과 김영삼 8단. 박 회장과 한국기원 강명주 상임이사(지지옥션 회장)와 기자까지 다섯 명이 함부르크에 도착한 것은 9일 밤. 바둑TV와 인터넷 사이트 사이버오로 기자 4명도 곧이어 도착했다. 한데 함부르크는 위도가 높아 밤 10시가 되어도 환하고 새벽 3시만 되면 또 환해지는 통에 첫날부터 뜬눈으로 보냈다.



유럽 바둑은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유럽 콩그레스가 시작된 것도 50년이 넘는다. 실력에선 하수지만 이미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바둑대회는 11일부터 3일간 하인리히 폴거스트 스쿨에서 열렸다. 독일과 유럽 전역에서 250여 명이 참가했다. 개막식부터 색다른 풍경이다. 생후 6개월 된 아기를 업은 남자 , 부부와 가족, 젊은 연인 …. 즐겁고 흥청거린다. 하나 막상 대국이 시작되자 그토록 진지할 수 없다.



 유럽에서 활약 중인 한국 기사들도 속속 대회장에 나타난다. 김성래 8단은 헝가리에서 한국바둑센터(KBC)를 운영 중이다. 23세의 여자기사 고주연 8단은 스웨덴에서 외롭게 혼자 보급을 맡고 있다 (이들이 다 8단인 것은 한국기원이 해외 보급기사들에게 일률적으로 8단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유럽에 온 지 4년이 된 황인성 아마 7단은 유럽랭킹 2위(1위는 러시아의 일리야 식신)인데 이미 이곳 흐름을 꿰뚫고 있어 꽤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는 바둑 인구 200명에 불과한 스위스에서 30명을 가르치고 있고, 공식 바둑사범으로 인정받아 16명의 어린이 리그도 만들었다 (이들 외에 런던에 여자 아마추어인 강경랑 7단이 있고, 스페인에 오은근 아마 6단이 있다. 러시아엔 한국에서 프로가 된 샤샤 초단이 있는데 이들은 이번 대회엔 오지 못했다. 유럽 바둑인구는 러시아가 10만 명, 그 외의 국가들을 모두 합쳐 10만 명. 합계 20만 명. 독일은 3만 명. 유럽에선 독일이 러시아 다음의 강국이다).



 서울에서 온 권갑룡 8단은 이세돌 9단의 스승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인기 만점이다. 김영삼 8단 주위에도 한 수 배우려는 어린이와 청년들이 몰려다닌다. 대회는 여러 개의 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치러지고 한쪽엔 식당과 생맥주를 제공하는 호프집, 또 한쪽엔 바둑용품과 책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곳에서 윤영선의 사활 책자, 권갑룡의 『귀수마수』를 구입한 참가자들이 계속 사인을 요청한다. 하루 일정이 끝나도 이들은 밤 12시까지 대회장에 남아 바둑에 몰두한다. 휴가를 내 불원천리 달려와 죽어라고 바둑을 둔다. 서울에선 함부르크의 수퍼 박테리아 얘기가 많았는데 이곳에선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12일 어린이리그 우승자가 나왔다. 얀(Jan)이라는 11살 꼬마인데 실력은 20급. 이들 세계에선 장문, 축을 알면 고수다. 7살 먹은 최연소 마뉴엘은 9급인데 성인대회에 참가했다. 랭킹이 가장 높은 8명은 수퍼클래스로 분류돼 별도로 시합을 했고, 그들 바둑은 사이버오로의 영문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됐다.



 8명의 최강부 대결에서 우승컵은 헝가리의 팔 발로그 7단에게 돌아갔다(우승상금 1000유로). 발로그는 수염을 잔뜩 기른 25세의 도인 같은 청년인데 기자가 “좀 이상하다”고 하자 황인성 7단은 “유럽에서는 이상해 보이지 않고서는 6단이나 7단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다들 바둑에 목을 맨 청년들이고 이미 만사를 작파하고 이 길에 10년 이상 몰두해 왔다고 한다.



 축제 같은 시상식이 끝나고 모두 들 뿔뿔이 차를 타고 떠난다. 한데 그중 25명은 윤영선 8단과 함께 일주일 동안 브레멘의 세미나에 간다고 한다. 무슨 세미나냐고 묻자 “바둑 합숙훈련 캠프”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곳 참가비는 450유로(약 70만원).



 대회 기간 내내 밤 12시가 넘도록 바둑을 두더니 또 바둑을 두러 간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들은 8월 초의 유럽콩그레스(올해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다)까지 내쳐 바둑만 둘 작정인가. 14일 아침 우리 일행은 프랑스 접경의 스트라스부르로 떠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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