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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에서 세계적 건축물이 안 나오는 까닭은

중앙일보 2011.06.15 03:00 종합 2면 지면보기






이은주
문화부문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 쿠페르티노에 세워질 애플의 새 사옥 설계를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맡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포스터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어온 애플이 택한 건축 디자이너라는 점에서 지구촌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누구인가. 대영박물관의 그레이트홀과 런던시청 등을 설계했다. 그가 애플이 추구하는 혁신성·창의성을 어떤 공간으로 표현해낼지 기대된다. 세계 무대에서 건축의 위상은 그렇다. 그런데 한국의 풍경은 참 다르다. 건축가의 이름은커녕 건축의 품질도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지난 4월 말 충남 아산시에 완공된 이순신 기념관은 우리 건축가의 열악한 현실을 압축한 ‘종합선물세트’다. 설계자 이종호씨가 준공식 참석을 거부하는 일조차 벌어졌다. <본지 6월 14일자 3면>











 건물과 전시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하려던 건축가의 의도는 보기 좋게 어그러졌다. 건축가는 자기 자식 같은 기념관의 품질관리(감리)를 애초부터 할 수 없었다. ‘설계 따로, 감리 따로’ 제도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1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관급 공사인 경우 건축가는 감리에 참여할 수 없다. 설계도만 완성하면 끝나는 기능공인 셈이다. 공간 디자이너 건축가가 실종됐다. 이른바 건축 선진국에는 없는 제도다.



 더한 일도 있다. 설계자와 의논하지 않고 공간 구성을 바꾸는 일마저 벌어졌다. 건축가가 구현하려던 기념관과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예컨대 이순신 기념관에는 이씨가 구상했던 ‘난중일기’ 방이 없었다. 대신 ‘첨단’이라는 꼬리표를 단 4D영상관이 들어섰다.



 보도가 나가자 건축가들의 호응이 쏟아졌다. 혼자 끙끙 앓던 속병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이기용씨는 “건축가와 업무와 감리를 떼놓고 생각하는 것은 프랑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설계용역 계약 시 ‘loi MOP’라는 법에 따라 감리는 건축가의 기본업무로 보장된다”고 말했다. 최근 방한한 일본 건축가 노리히코 단은 “건축가에게 감리를 하지 말라는 것은 의사에게 환자를 만나지 말고 처방전을 쓰고 진료하라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제도적 정비다. 건축을 문화로 보는 당국의 의식 전환과 법안 마련이 절실하다. ‘디자인 서울’ ‘디자인 코리아’ 등 구호는 절로 실현되는 게 아니다.



이은주 문화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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