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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서 매스티지로 … 대중의 명품 욕망이 청담동을 바꿨다

중앙일보 2011.06.15 01:32 종합 4면 지면보기
서울 청담동 거리. 한국 명품시장을 상징하는 곳이다. 한국판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다. 2004년만 해도 고급 빌라촌이었던 이곳. 2008년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긴 했지만, 변신을 거듭하며 지금은 대중 명품시대를 상징하는 곳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명품시장 5조원 시대. 청담동을 샅샅이 훑어봤다. 


명품시장 5조원 시대 … ‘한국판 샹젤리제’ 청담동 이야기

지난달 말 서울 청담동 80-3 번지. 디자이너 장광효의 부티크 브랜드 ‘카루소’가 들어선 곳이다. 이 브랜드의 박성목 실장은 “우리가 개점했던 7년 전만 해도 청담동은 갤러리와 고급 빌라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최고급 명품매장이 들어서 명품거리가 됐고, 레스토랑과 웨딩숍이 차례로 입점하면서 명품거리의 대중화를 이뤘다”고 덧붙였다. “그 대중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고도 했다. 청담동 83-16에 위치한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봉고’를 운영하는 SG다인힐. 이 회사 박영식 부사장은 뜻밖의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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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VIP(최상류층 고객)들이 찾는 최고급 레스토랑은 이미 청담동을 떠났습니다. 최고급 레스토랑은 상권이 대중화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성향이 있어요. 이태원과 동부이촌동으로 빠져나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이미 3, 4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청담동이 변하고 있다. 프레스티지(prestige·명품)에서 매스티지(masstige·대중 명품)의 대명사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2009년 4조원. 지난해는 5조원으로 1년 만에 폭발적으로 커졌다. 올해는 5조7000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백화점업계는 추정한다. 이런 규모에 걸맞게 청담동이 대중까지 명품 구매에 뛰어드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본지 2009년 2월 17일자 E1면.



 10일 오후 4시 청담동 명품거리의 보석가게 골든듀 매장 맞은편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카페베네. 1490㎡(45평) 규모에 손님 20여 명이 앉아 있다. 3개월 전 문을 연 이곳의 주고객은 인근 사무실 직원과 쇼핑객들. 카페베네 본사 관계자는 “청담동 일대 쇼핑객이 늘어났는데도 이들이 쉴 만한 공간이 없어 사업성이 있다고 봤다. 한 달에 30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카페베네 맞은편 대로변에는 수제 햄버거 전문점인 크라제버거가 있다. 고급 레스토랑만 있던 명품거리에 메뉴 하나에 1만원 정도 하는 대중식당이 들어선 것이다.



지난해엔 루이까또즈 매장이 리모델링해 다시 문을 열었다. 루이까또즈는 원래 프랑스 브랜드. 이를 국내 업체인 태진인터내셔널이 인수한 것으로, 다른 해외 명품에 비해 가격이 다소 저렴한 ‘대중 명품’ 브랜드다. 명품거리에서 만난 회사원 이주희(33)씨는 “토리버치나 MCM·코치는 명품이라 말하기엔 좀 어려운 브랜드인데, 이곳에서 매장을 볼 수 있다”며 “여기서 멀지 않은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국내 의류 브랜드인 크로커다일 매장이 있어 신기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청담동의 변화는 중산층의 대거 유입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담동 웨딩숍 아이웨딩네트워크 윤현철 마케팅부문 전무의 말.



 “2000년대 중반 이후 명품거리에 걸맞게 유학파 디자이너와 사진작가들이 서서히 웨딩 관련 숍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 숍들이 중산층을 청담동으로 끌어들인 계기 중 하나죠. 일생에 한 번인 결혼식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중산층도 청담동에서 구매력 있는 소비자가 됐다 이 말입니다.”



 청담동의 변화는 ‘뚜벅이 쇼핑객’도 한몫한다. 3~4년 전만 해도 이곳은 차로 다니며 쇼핑하는 ‘드라이빙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걸어다니며 쇼핑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내년 6월 지하철 분당선 신청담역이 갤러리아 백화점 사거리에 개통되면 유동 인구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리고 청담동의 변화는 의외의 상황을 자아내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인데 이곳은 예외다. 우선 유통업체와 패션업체가 이 일대 부동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제로 신세계는 올 초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 코치 건물 뒤쪽에 있는 한 빌딩을 매입했다. 롯데쇼핑의 신영자 사장이 설립한 에스앤에스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말 도산공원 앞 건물을 사들였다. LG패션도 명품거리와 학동 사거리가 만나는 곳에 건물을 사들여 자신들이 수입하는 고급 명품 브랜드의 편집매장을 만들었다.



 세계 명품업체 역시 부동산 구매에 뛰어들었다. 루이뷔통을 거느린 LVMH그룹은 지난해 청담 사거리 인근에 빌딩 두 채를 사들였다. LVMH그룹은 소속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디올의 단독 매장을 짓는 공사를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LVMH그룹이 청담동에 루이뷔통 매장을 샀다가 땅값이 뛰면서 막대한 이익을 봤다”며 “크리스찬디올 브랜드 자체는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아 투자 여력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 건물 인수는 부동산 투자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일대 건물 매매가는 1년여 사이 20~30% 상승했다. 3.3㎡(1평)당 1억5000만원~2억원 정도 하던 게 2억원에서 최대 3억원까지 뛰었다. 명품거리 내 한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매매가는 올랐지만 임대료는 그대로다. 개별 상점 매출이 그대로란 뜻”이라며 “매출이 오르면서 임대료와 매매가가 순차적으로 오른 게 아니라 땅값이 뛸 거란 기대심리 때문에 매매가가 올랐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명품이면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 한 곳쯤은 있어야 한다”며 “반드시 가게를 내야 하는데 임대 매장은 구하기 힘들고, 차라리 땅이나 건물을 사겠다는 생각들”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부동산업체 측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엔 빈 상점도 많았는데 1년 반이 채 못 돼 상황이 반대가 됐다. 불황을 거치면서 대중화로 돌파구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2월엔 2만원짜리 땡처리 세일까지 등장할 정도로 명품거리엔 찬바람이 불었다.



<본지 2009년 2월 17일자 E1면>



그런데 지금 명품거리는 극소수 빈 상점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대부분 리뉴얼 또는 확장 공사 중이었다.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가게를 내려면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며 “공실은 없다”고 말했다.



 건국대 이현석(부동산학과) 교수는 “갤러리에서 출발한 프랑스 샹젤리제 거리도 명품매장이 들어서면서 높은 건물 값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중 지향의 상업 매장이 늘어났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들도 대거 들어섰다. 청담동도 이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문조(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유달리 타인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선 명품에 대한 모방적 소비가 강하게 나타난다”며 “명품의 대명사 청담동이 대중화되는 것도 역시 너나없이 명품을 찾는 대중화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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