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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국가는 풋옵션 발행자다

중앙일보 2011.06.15 00:29 경제 8면 지면보기



경제 기초자산으로 풋옵션 발행
문제 생기면 재정으로 위험 부담
경제와 금융 변동성 줄여야 이익
펀더멘털 튼튼히 해도 위험 줄어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주로 정치학과 행정학·헌법학의 연구 주제다. 그렇다면 금융의 시각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금융의 본질은 위험을 인수하고 변형하고 상품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금융의 관점은 곧 위험의 관점이다. 위험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최종 위험 부담자’다. 최저소득 보장과 의료 및 장애 보험, 공적연금, 부실은행 구제금융에 이르기까지 위험 부담자로서 국가의 역할은 실로 다양하다.



 누가 상대방의 위험을 부담한단 말은 곧 상대방에게 풋옵션을 발행한다는 말이다. 결국 국가는 ‘풋옵션 발행자’다. 한국 정부는 한국경제를 기초자산으로 해 풋옵션을 발행한다. 평상시엔 세금을 받아 재정 수입을 얻지만 문제가 생기면 재정을 투입해 위험을 부담한다. 평상시엔 옵션 판매 수익을 얻지만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것을 갚아 줘야 하는 풋옵션 발행자와 같은 입장이다. 국가를 풋옵션 발행자라고 보면 재정운용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금융시장 풋옵션 발행자처럼 정부도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경제의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풋옵션 보유자는 변동성이 클수록 유리하다. 좋은 쪽은 취하고 나쁜 쪽은 보장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발행자는 변동성이 클수록 불리하다. 나쁜 일이 자주 생기고 또 생길 때마다 상대방에게 갚아 줘야 하기 때문이다. 풋옵션 발행자인 국가도 마찬가지다. 변동성을 줄여야 이익이다. 풋옵션 기초자산이 경상수지일 수도, 외환시장일 수도, 한국경제 전체일 수도 있다. 경제와 금융의 변동성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풋옵션을 발행한 국가의 부담이 준다.



 둘째, 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 풋옵션 발행자에게 가장 좋은 상황은 옵션이 행사되지 않는 것이다. 약속한 위험 부담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행자 입장에선 풋옵션 행사 가능성을 줄이는 게 최선의 전략이다. 풋옵션은 기초자산의 시장가격이 높을수록, 행사가격이 낮을수록 행사 가능성이 낮아져 발행자에게 유리하다. 국가 입장에선 한국경제가 기초자산이다.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치가 높을수록 풋옵션이 행사될 가능성이 준다. 예를 들면 경기가 활성화될수록 실업이 줄 테니 실업수당 형태로 발행된 풋옵션 행사가 줄 것이다. 기업 성과가 좋으면 은행의 부실채권이 줄고 공적자금 투입 형태의 풋옵션도 행사되지 않을 것이다. 행사가격은 낮아야, 즉 행사조건이 까다로워야 아무렇게나 풋옵션이 행사되지 않는다. 무상급식과 무상교육 같은 정책은 무조건 풋옵션을 행사하게 만들어 재정을 악화시킨다. 국가 입장에선 위험한 정책이다. 복지 확대,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복지를 대상으로 한 풋옵션 발행은 선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스가 좋은 예다. 금융 시각에서 보면 그리스는 정부가 발행하는 풋옵션을 방만하게 설계했다. 봇물같이 풋옵션이 행사됐고 국가가 부도위기에 몰린 것은 당연한 결과다.



 셋째, 국가재정도 시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시장에서 풋옵션을 발행한 선진 투자은행을 보면 부담한 위험을 스스로 헤지한다. 하지만 국가가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위험은 국내 시장을 통해 헤지하기 힘들다.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처럼 다른 국가들과 상호 간에 헤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시장을 통해 헤지할 수 있는 위험은 굳이 국가가 부담할 필요가 없다. 시장에서 치고받고 싸우게 놔두고 정 안 되는 위험만 국가가 부담하면 된다. 국가는 최종 위험 부담자이지 최초 위험 부담자가 아니다.



 풋옵션 발행은 국가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래야 신성장산업도 개발하고 노후생활도 보장할 수 있다. 다만 재정운용에 있어 정부 스스로가 풋옵션 발행자란 인식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빌 클린턴이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존경받는 이유는 국가가 풋옵션 발행자란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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