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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칼럼] “등록금 깎아 달랬지 올려서 빌려 달랬냐”

중앙일보 2011.06.15 00:24 종합 35면 지면보기



“가벼움과 무책임성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여야
포퓰리즘 경쟁 번져가면
나라 말아먹기 십상이다”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




MB(이명박 대통령)정부가 출범한 몇 달 뒤 MB의 모교인 고려대를 둘러본 적이 있다. 한때는 ‘데모 대학’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야성(野性)이 강한 학교이자, 선후배 간 정이 끈끈하기로 정평이 난 대학이 고려대 아닌가. 야성이 앞설까, 의리가 앞설까. 후배 대학생들의 선배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태도가 궁금했다.



 학생들은 대체로 MB에게 우호적인 분위기임을 느낄 수 있었다. 교정의 정부 비판 현수막도 그 이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그런데 유독 찬물을 확 끼얹는 포스터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MB, 등록금 깎아 달랬지 올려서 빌려 달랬냐.’



 군더더기 하나 없는 이 문구가 갓 출범한 MB정부를 향해 비수처럼 날아가 꽂히는 듯했다. 당시 정부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대출받은 학자금을 졸업 후 소득이 발생했을 때부터 분할 상환한다는 게 이 제도의 골자다. MB는 “이제 대학 등록금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라고 큰소리까지 쳤다. 그러나 이 제도는 금리가 비싸고,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등으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기초수급자 등 저소득층 학생들은 기존에 적용되던 무상 장학금이나 1~1.5%의 초저금리 대출 혜택을 못 받게 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그리고 3년여가 흘렀다. ‘걱정 안 해도 된다’던 대학 등록금이 정국의 최대 뇌관으로 등장했다. MB와 MB정부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한나라당의 황우여 원내대표가 “대학 등록금을 최소한 반값으로 했으면 한다”고 운을 뗀 뒤 불붙은 사회적 논란에 정부·여당은 쩔쩔매고 있다. 비싼 대학 등록금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닐 텐데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단 말인가.



 정부의 무대책도 그렇지만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소란을 보면 더욱 한심한 생각이 든다. 한국 정치의 낙후성을 자랑이라도 하듯 그 가벼움과 무책임성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다. 여권의 의사결정 구조부터가 그렇다. 혹자는 대학 등록금 문제를 이슈화시킨 황 원내대표의 용기(?)를 찬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 사안의 폭발성을 간과한 채 너무 안이하게 내지른 측면이 있다. 국가재정의 감당 능력, 큰 그림의 복지·교육 정책과의 연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뒤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문제를 제기하는 게 순서였다. 그러자면 당·정 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 시간표까지 갖춰진 완벽한 대책 마련이 선행됐어야 했다. 그러나 여당 내부에서부터 삐걱거리는 걸 보면 그런 게 몽땅 생략됐음을 알 수 있다. 벌집만 쑤셔놔 오히려 차분한 대책 마련을 어렵게 만든 과오가 크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서두르지 말라”고 제동을 걸고 나섰을까.



 야당의 가벼움은 한술 더 뜬다. 촛불시위가 그리도 반가운가. 학생들의 시위 현장으로 달려간 건 그렇다 치자. “한나라당안과 뭐가 다르냐”는 야유에 화들짝 놀라 대책이 춤추고 있다. 2013년부터 소득 50% 이하 자녀에게 등록금 일부를 지원하겠다던 당론을 ‘당장 2학기부터’에서, 다시 ‘내년부터 고지서상의 반값’으로 바꿨다. 화끈하다. 그러나 어딘가 엉성하다. 부실 대학의 문제라든지, 과도한 대학 진학률과 대졸 취업난, 고졸자와의 형평성 등은 언급되지 않아 과연 수권정당의 종합적이고도 책임 있는 대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만약 손학규 대표가 시위 현장에서 “등록금 문제는 나와 우리 당에 맡겨달라. 그리고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 학업에 열중하길 바란다”라고 설득했다면 어땠을까. 현장에선 학생들의 야유가 더 심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 묵직한 리더십에 큰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



 기왕에 불거진 논란이다. MB부터 취임 초 호언을 지켜야 한다. 등록금 걱정이 아예 없도록 해주면야 좋겠지만 최대한 부담을 줄여주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교육 백년지대계의 큰 틀에서 등록금 해법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처럼 포퓰리즘 경쟁이 번져가다간 나라 말아먹기 십상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의 한 구석엔 부족한 고졸 인력과 넘쳐나는 대졸 인력이란 왜곡 현상도 자리잡고 있다. 이는 잘나가던 상업고교의 쇠퇴와 괘를 같이한다. 아이러니한 건 상고의 쇠락이 상고 출신 대통령 3명이 연이어 집권하며 가속화됐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명예로움에도 불구하고 3개의 상고는 모두 없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의 목포상고는 전남제일고로,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는 개성고로, MB의 동지상고는 동지고로 이름까지 바꿔 인문고가 됐다. 상고의 쇠락은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명문 상고를 시들게 하고 너도나도 대학으로만 몰려가는 왜곡 현상을 바로잡지 못한 책임에서 상고 출신 3명의 대통령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중 MB는 아직 대통령이다.



허남진 정치분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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