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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그리스 사실상 디폴트 …‘리먼 악몽’을 떠올리다

중앙일보 2011.06.15 00:20 경제 4면 지면보기



S&P,신용등급 ‘CCC’로 강등 … 불안에 떠는 국제금융시장



그리스의 한 여성이 12일(현지시간)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에서 긴축정책과 부패에 항의하기 위해 빈 냄비를 두드리며 시위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날까지 19일 연속 시위를 벌였다. [아테네 로이터=뉴시스]



그리스가 국제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3일(현지시간)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3단계 강등했다. 이는 S&P가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는 126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이다. 게다가 S&P는 그리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유지해 앞으로 등급을 더 깎을 여지를 남겨뒀다. S&P의 그리스 신용등급 강등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지난 1일 무디스가 ‘B1’이었던 그리스 신용등급을 ‘Caa1’으로 깎은 바 있다. S&P의 ‘CCC’는 무디스의 ‘Caa1’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선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데자뷰를 떠올리고 있다. 리먼브러더스는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이었다.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비롯한 파생상품 투기에 나섰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파산했다. 리먼이 팔았던 파생상품이 휴지조각이 되자 국제금융시장은 요동쳤다. 파생상품 투기에 뛰어들었던 투자자는 앞다퉈 투매에 나섰다. 전 세계 금융거래에서 리먼이 판 파생상품 비중은 미미했지만 핵폭발과 같은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은 초토화됐다. 이번엔 그리스가 국제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언론이 전했다.











 S&P가 그리스 신용등급을 깎은 이유는 채무 구조조정 가능성 때문이다. 그리스는 이미 독자적으로 재정위기를 수습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독일로부터 1430억 달러의 2차 구제금융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막판에 독일이 제동을 걸고 나왔다. 이번에는 민간투자자도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이다. 민간투자자도 단기채무를 장기채무로 바꿔주는 정도의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ECB와 독일이 지원하는 구제금융이 고스란히 민간투자자의 빚을 갚는 데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자 S&P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민간투자자가 강제로 그리스 채무 구조조정에 참여하게 되면 이는 사실상 그리스 국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아직 민간투자자 참여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의 대표인 독일이 민간투자자 참여를 고집하자 무디스에 이어 S&P가 신용등급 강등이란 강수를 두고 나왔다. S&P는 “민간투자자가 실제 채무 구조조정에 참여하게 되면 그리스 신용등급은 사실상의 디폴트인 ‘D’로 강등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스가 지고 있는 채무는 4730억 달러 정도다. ECB나 독일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미국이 나서면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다. 문제는 파급효과다. 당장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이니셜) 국가’의 국채에 투매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스페인이 위기에 처하면 유럽연합(EU)의 힘만으론 수습이 어려워진다. 이는 다시 유럽국가 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미국 머니마켓펀드(MMF)의 부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난 2월 현재 미국 주요 머니마켓펀드는 자산의 44.3%를 유럽 은행의 단기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그리스 국채 보유량이 많은 소시에테제네랄·크레디트아그리콜·BNP파리바 등 프랑스 은행 주식에도 투자하고 있다.



 현재로선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지는 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이번에 위기를 넘기더라도 민간투자자까지 참여하는 채무 구조조정 없이 그리스의 재정위기를 근본적으로 수습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그리스 디폴트가 다른 재정위기 국가로 파급하는 것을 어떻게 막느냐가 ECB·IMF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숙제다. 일각에선 국제금융시장이 1998년 러시아, 2001년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위기를 넘길 것이란 낙관론도 나온다. 13일 그리스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도 뉴욕 증시가 크게 흔들리지 않은 건 이 때문이란 것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디폴트=채무 불이행이나 부도를 뜻한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도 디폴트를 낼 수 있다. 국가가 발행한 채권(국채)을 갚지 못하는 경우다. 이를 국가 디폴트나 국가 부도라고 한다. 채권자는 국가부도에 대비해 제3의 기관과 신용부도스와프(CDS) 계약을 맺어 원금(보험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때 지급하는 프리미엄(보험료)이 CDS 프리미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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