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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프랑스 ‘외교 가시’사라졌다

중앙일보 2011.06.15 00:04 종합 33면 지면보기






박흥신
주프랑스 대사




온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외규장각도서 297권이 모두 고국의 품에 안겼다.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외규장각도서를 발견한 지 36년 만에, 우리 정부가 프랑스 측에 외교채널을 통한 공식 반환요청을 한 지 20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동안 외규장각 도서 문제는 한·프랑스 양국 간 최대 난제였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도서반환을 요청했고, 정부 인사들과 국회의원들도 파리를 찾을 때마다 같은 요구를 해왔다. 그러나 프랑스가 아랑곳하지 않자 우리는 민간협상 대표를 임명해 돌파구를 찾으려고도 시도했으나, 이 또한 결론 없이 끝났다. 결국 10년 전부터 정부 간 협상체제로 돌아왔지만 프랑스 정부는 협상 자체를 기피해 왔다.



 2009년 대사로 부임한 필자 역시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각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했다.



 우리 국민의 염원을 담은 호소가 한국에 이어 차기 주요 20개국(G 20) 의장국 수임을 앞두고 대한(對韓) 관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때마침 프랑스 대북정책 대통령 특사로 활동 중이던 문화계 대부 자크 랑 의원도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돌려줘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초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돌려줄 방안을 모색하라고 프랑스 외교부에 지시했다.



마침내 지난해 5월 수년 동안 중단돼온 양국 간 도서반환 협상이 재개됐다. 그러나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자신들의 국내법과 “우리 소장품을 한국에 돌려주면 다른 나라들의 문화재 반환요구는 어떻게 막겠느냐”며 반발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차선책으로 장기대여 방안을 택했다.



그러자 이번엔 국내 문화계가 “빌려오는 형식으로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을 수는 없다”고 반발해 협상은 안팎으로 난항을 거듭했다.



 다행히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연 정상회담에서 5년 단위 갱신을 조건으로 한 영구대여 방식으로 외규장각 도서를 한국에 반환키로 합의하면서 드디어 물꼬가 트였다. 국내 문화계도 대승적으로 이해해줘 마침내 외규장각 도서가 프랑스에 약탈된 지 145년 만에 고국 땅에 돌아오게 됐다.



지난달 13일 프랑스를 찾은 이 대통령에게 사르코지 대통령은 “한국민의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애착과 감성을 존중해 돌려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제 프랑스가 우리나라를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간주하게 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우리 국민의 힘, 대한민국의 커진 국력과 위상이 외규장각 도서를 되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 문제라는 ‘가시’가 사라진 한국과 프랑스 관계는 이제 진정한 도약의 문턱에 서 있다. 양국 수교 130주년을 맞는 2015년에는 서울과 파리에서 상호 교류 행사가 찬란하게 펼쳐질 것이다.



박흥신 주프랑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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