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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27) 한국FP협회를 만들다

중앙일보 2011.06.15 00:04 경제 9면 지면보기



남은 인생, 금융 인력 양성에 걸다
세계 주름잡던 일본 은행들 인재 못 키워 밀려나
출범 11년 … 금융업 종사자 22만 명이 교육 이수



한국FP협회는 매년 재무설계사 1300여 명이 참석하는 FP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윤병철 회장이 2009년 12월 FP 콘퍼런스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재무설계사는 고객의 재무적 건강을 관리하는 재무 주치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7년, 하나은행장 자리를 스스로 내놓고 물러나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를 위해 돈을 벌거나 취직하지 않겠다.’ 우리금융지주를 떠날 때도 몇 군데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남은 인생은 그동안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었다. 무엇으로 사회에 보답할 수 있을까. 심사숙고 끝에 금융계에 도움 되는 일을 하자고 작심했다.



 금융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의 경쟁력이 없으면 우리나라 금융도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는 게 내 믿음이다. 규모는 그다음 문제다. 1980년대 세계 10위권 은행 중 6개가 일본은행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 곳만 남기고 모두 밀려났다. 외형은 컸어도 사람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융전문가를 키우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1969년 미국에서 탄생한 CFP(Certified Financial Planner, 국제공인 재무설계사) 자격 제도가 일본·호주·캐나다 영국 등지로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능률협회를 통해 알게 됐다. CFP는 금융소비자들에게 인생목표 달성을 위한 재무설계를 해주는 전문가로서, 투자에 대한 지식은 물론 보험·부동산·세금·은퇴 및 상속설계에 관한 전문지식과 윤리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해 그 역량을 확인하여 자격을 주는 제도였다. 금융업 간 칸막이가 사라지는 겸업화 시대에 딱 맞는 교육시스템이었다. 또한 금융전문가를 길러 금융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금융소비자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교육제도였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계에서조차 재무설계는 생소했다. 게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 금융회사들은 기존에 있던 인력도 내보내는 판국이었다. 금융 관련 협회와 금융회사 여러 곳을 찾아가 지원을 부탁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결국 능률협회에서 운영자금을 빌려 한국FP협회를 설립해 외롭게 CFP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초창기만 해도 “은행은 예금을 많이 받고 대출 잘하면 장사가 되는데 왜 새롭게 자꾸 귀찮은 일을 벌이려고 하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선진국에선 금융 겸업화가 한창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머나먼 일로 여겼다. “민간이 자격을 줘서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심지어 “자격증 장사를 하려고 한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변화는 빨리 왔다. 2001년 우리나라도 지주회사 형태로 금융의 겸업화를 허용했다. 우리·신한금융지주 등 지주회사가 속속 출범했고 계열사 간 교차 판매 강화를 위해 프라이빗 뱅킹(PB) 점포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각 은행들은 PB센터를 만들었는데 어떤 서비스를 해야 할지 체계를 잡지 못했다. 그런데 FP협회가 투자관리나 위험방지, 부동산과 세금 등을 종합적으로 교육해 자격을 준다니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금융회사들의 독려로 CFP 자격은 금세 자리를 잡게 됐다.



 올해로 FP협회가 출범한 지 11년째. CFP 합격자는 7000명 정도로 늘었다. CFP자격과 CFP자격의 전 단계인 AFPK자격을 따려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교육을 이수한 사람은 전체 금융업 종사자 62만 명의 35%인 22만 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서울대를 비롯한 25개 대학에서 재무설계를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하는 등 재무설계에 대한 대학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FP협회를 만들 때는 금융계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이 목표였다. 하지만 정작 이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건 금융인뿐 아니라 개인과 가계에도 꼭 필요한 게 재무설계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금융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기 자산의 운영이나 돈에 대해 전반적으로 잘 모른다.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쓰고 관리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한 몫 잡자는 생각에 고수익만 좇기가 쉽다. 그러다 보니 실패도 많았다. 최근 예금자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부분도 실종된 금융인의 윤리의식과 금융소비자들의 빈약한 재무지식이다.



 FP협회 회원들이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면서 금융소비자들에게 재무교육도 시키고 무료로 재무설계를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영국·캐나다 등은 정부가 경제안정과 복지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국가전략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재무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일반 시민들에 대한 재무교육을 더욱 확대해 그들이 안정되고 활기찬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일에 더욱 노력할 생각이다.



정리=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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