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명복의 세상읽기]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중앙일보 2011.06.15 00:02 종합 33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사실 책이라고 하기도 쑥스럽다. 주석을 포함해 본문이 35쪽밖에 안 되니 말이다.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 팸플릿이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출판사는 역자 후기, 저자와의 인터뷰, 추천사에 몇 장의 도판까지 보태 엿가락처럼 늘린 끝에 분량을 88쪽으로 맞췄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허전하다. 지난주 국내 서점가에 깔린 『분노하라(Indignez-vous)』란 제목의 번역서 얘기다.



 이미 각종 매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된 책에 대해 뒷북을 치는 것은 사족(蛇足)일 뿐이다. 금시초문일 수 있는 독자들을 위해 나치 독일에 항거해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던 프랑스인, 스테판 에세(94)가 프랑스 젊은이들을 위해 작년 말 쓴 책으로, 프랑스에서만 약 200만 부가 팔렸고, 20여 개국에서 이미 출간됐거나 곧 출간 예정이라는 정도만 덧붙인다.









[일러스트=강일구]



 한국에서도 이 책의 초반 기세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출판사에 따르면 초판 2만 부를 찍었는데, 일주일 만에 거의 다 나가 2쇄 인쇄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돌베게 출판사의 소은주 편집자는 “사회적 이슈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고, 청년실업과 양극화 현상 속에 공정사회가 화두로 등장한 우리 현실이 책의 주제와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세대에게 “분노의 총대를 넘겨받아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이상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이를 위해 레지스탕스가 꿈꿨던 ‘자유 프랑스’의 이상을 젊은이들에게 상기시킨다.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모든 시민에게 생존 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연금제도, 경제·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진정한 경제·사회적 민주화, 노동계가 창출한 부의 정당한 분배, 국가와 금권으로부터 독립된 언론….” 그러나 오늘날 프랑스의 현실은 어떤가.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 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국가의 최고 영역까지 금권의 충복들이 장악한 사회, 금권이 전에 없이 거대하고 오만해진 사회, 은행의 주주와 경영진이 고액 배당과 연봉에나 신경 쓸 뿐 일반 대중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회,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역사상 가장 크게 벌어진 사회,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극도로 부추기는 사회….” 망백(望百)을 넘어 백수(百壽)를 바라보는 노인이 확성기를 들게 된 이유다.



 한국과 프랑스는 다르다. 상대적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면서 과거에 구축해 놓았던 물질적·정신적 토대가 하나 둘 무너지고 있는 것이 프랑스의 문제라면, 한국의 문제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부작용과 후유증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프랑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한국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다 보니 중간 지점에서 유사한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에세의 분노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분노가 끓고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보다 편법과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이 더 잘사는 사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겐 가혹하고 돈 있고 힘있는 사람에겐 관대한 고무줄 같은 법 집행,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점점 벌어지기만 하는 사회·경제적 격차, 자기만 생각하는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 도덕적 해이를 넘어 불법과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는 휘발유에 불을 붙이는 분노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물이 끓어오르면 넘치듯이 시민들의 분노가 쌓여 의분(義憤)이 되고, 공분(公憤)이 되면 폭발하기 마련이다.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사회적 분노를 공론화하고 의제화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고, 그 해법을 찾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이 둘이 제 기능을 못하거나, 신뢰를 잃으면 분노는 다른 배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대안 매체의 등장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활발한 의사소통은 주류 언론과 정치에 대한 불신의 반영일지 모른다.



 에셀은 말한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라고.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할 수밖에…”이렇게 말하는 것은 분노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폭력은 안 된다고 그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비폭력적 참여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SNS 같은 네트워크를 활용하든, 시민운동에 참여하든, 투표로 심판을 하든 오로지 평화적인 참여를 통해서 문제 해결에 접근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90여 년 산전수전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