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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21) 20세기 ‘괴걸’ 저우

중앙일보 2011.06.12 22:24


▲저우언라이(1898~1976)는 어린시절부터 타협과 협상력이 뛰어났다.

20세기 ‘괴걸’ 저우, 메모지 한장 들고 키신저 상대

1914년 7월 톈진(天津) 난카이(南開)학교 2학년 시절의 저우. [김명호 제공]



1971년 7월 9일 낮 12시15분 키신저 일행과 중국 외교관들을 태운 비행기가 베이징 난웬(南苑) 비행장에 도착했다. 왕하이롱(王海容·왕해용)이 후다닥 트랩을 내려갔다. 내릴 차비를 마친 키신저가 “미 제국주의자 중에서 중국 땅을 제일 먼저 밟는다”고 농담을 던지자 다들 박수로 화답했다.



군사위원회 부주석 예젠잉(葉劍英·엽검영)과 키신저의 방중 때문에 부임을 미루고 있던 캐나다 대사 황화(黃華·황화), 리커농(李克農·이극농) 사후 국내외 정보를 총괄하던 참모차장 겸 군사정보국장 슝샹후이(熊向暉·웅향휘), 시골 학교 영어교사 출신으로 외국 국가원수 접대가 전문이었던 후일의 주미대사 한수(韓<53D9>·한서)가 일행을 맞이했다. 간단한 인사 몇 마디로 환영의식을 대신했다. 키신저는 예젠잉의 차에 동승했다.



중국 측은 댜오위타이(釣魚臺·조어대)에 도착한 미국인들에게 점심 먹기 전까지 30분간 휴식을 취하라고 했지만, 키신저 일행은 도청을 우려했다. 5분이 조금 지나자 산책을 하겠다며 마당으로 나왔다. 산보는 순전히 핑계였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대며 연방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누가 듣기라도 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같았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중국인들은 이웃나라에서 중요한 손님들이 왔을 때 고도의 훈련을 거친 시각 장애인들을 동원하는 전통이 있었다. 청각이 예민한 이들은 산책로나 숙소 주변 은밀한 곳에 숨어 가운데가 텅 빈 막대기를 귀에 대고 모기 소리까지 잡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첫날 오찬은 예젠잉이 주재했다. 마오타이를 한잔 권했지만 키신저는 입에 대지 않았다. 통역으로 참석했던 탕롱빈(唐龍彬·당용빈)은 재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키신저는 황급하게 파키스탄을 출발하느라 갈아입을 와이셔츠를 챙기지 못했다. 수행원 중 한 사람인 홀더릿지의 것을 빌려 입는 수밖에 없었다.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홀더릿지는 키신저에 비해 체격이 컸다. 오찬장에 나타난 키신저의 복장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중국에서는 흉이 아니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와 키신저의 만남은 오후 4시로 잡혀 있었다. 총리의 집무실로 가는 줄 알았던 키신저는 저우가 숙소로 온다는 통보를 받자 긴장하고 흥분한 모습이 역력했다고 한다. 그냥 앉아 계시면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문밖에 나가 기다리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후일 중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국제무대를 누빈 당시 저우언라이의 통역들은 지금도 40년 전 이맘때 저우와 키신저가 처음 만났던 장면을 엊그제 일처럼 기억한다. 키신저가 3명의 수행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저우는 이들의 신상을 손바닥 보듯이 파악하고 있었다. 키신저 옆에 서있던 홀드릿지의 손을 잡으며 “중국어에 능하고 광둥(廣東)말도 할 줄 안다고 들었다. 나도 한때 광둥말을 배웠지만 광둥인들은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며 홍콩에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윈스터 로드에게는 “부인에게 중국어 많이 배웠느냐? 부인의 소설을 읽고 싶다. 내가 중국에 한번 오시라고 했다고 전해라”며 덕담을 건넸다. 로드의 부인은 상하이 출신 작가였다. 후일 주중 대사로 부임하는 로드를 따라 베이징에 왔을 때 중국인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다들 상하이 부인(上海婦人)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스매저의 차례가 오자 “학술지에 실린 일본 관련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다음에는 중국에 관한 글이 실리기를 희망한다”며 왼쪽 눈을 찡긋했다. 키신저에게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환영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회의실에 자리 잡자 로드가 두툼한 문건을 키신저에게 건넸다. 키신저는 펼치지 않고 저우언라이를 힐끔 쳐다봤다. 저우에게 종이 쪼가리 한 장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다. 앞에 놓인 메모지 한 장이 다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는 그나마도 없었다. 키신저가 “우리 쪽에서 준비한 것들이다. 미안하다”며 빙그레 웃었다.



저우언라이가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편하게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의견이나 교환하도록 하자. 문건을 꼭 읽어야 되느냐.” 저우는 중국의 20세기가 배출한 괴걸(怪傑)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으로부터 “큰일은 알아서 처리해라. 사소한 일은 모두 보고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관여하지 않은 일이 거의 없었다.



키신저도 가만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하버드에서 강의를 했지만 원고를 미리 만들어 본적이 없었다. 이번만은 예외다. 총리가 읽어본다 해도 나는 따라가기가 힘들다. 읽지 않으면 더더욱 따라 갈수가 없다”며 모두를 웃겼다. 중국 측 참석자들은 미국 측에서 마련한 문건을 읽는 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인내가 필요했다. 키신저는 48시간 동안 베이징에 체류했다. 고궁 방문을 뺀 나머지 시간 거의를 저우와 실랑이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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