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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vs북한 군인vs염소,그 애증의 관계

중앙일보 2011.06.12 11:40












요즘 북한 군인들에게 염소가 애물단지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올해 초부터 각 가정에서 염소를 키우도록 독려했다. '모든 가정에서 염소를 대대적으로 키우자'는 내용의 포스터까지 제작해 전국 각지에 배포할 정도로 염소 사육에 애착을 보였다. 염소는 손쉽게 기를 수 있는데다 젖과 고기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기 바쁜 북한 주민들로선 염소 사육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그렇다고 염소를 가정마다 나눠줄 정도로 북한 당국의 재정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자 북한 당국은 명령이 통하는 군 부대로 눈을 돌렸다. 각 군부대마다 염소를 기르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군부대들은 궁리 끝에 '염소휴가제'를 도입했다. 염소 한 마리를 바치면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한달까지 휴가를 주는 식이다.

















북한 군인들은 오래 전부터 부식난으로 허덕이고 있다. 강냉이밥에 소금국으로 연명하다 요즘엔 배낭 메고 산나물까지 직접 캐러 다닐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염소를 부대에 바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인지 일부 군인들은 인근 농가에서 몰래 도둑질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국내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사·여단급 부대에서 염소목장과 돼지목장, 소형발전소와 같은 큰 규모의 후방(보급)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산하 군부대에서는 토끼장과 온실, 양어장 등 비교적 작은 후방시설도 짓고 있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어미 염소를 구해오는 북한 군인은 특급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염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집안이 좀 산다는 군인들만 상납을 할 수 있다. ‘부익부 빈익빈’이 군부대에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강원도의 한 부대에서는 가정환경이 비교적 괜찮은 군인들을 선발해 물자구입명목으로 휴가를 보내주고 있다. 어미염소 한 마리에 1개월, 새끼 염소 한 마리에는 보름의 휴가를 준다고 한다. 종자토끼 4마리를 구입한다는 조건으로 부대에서 20일의 휴가를 받은 군인도 있다.



그러나 군인들이 가축을 구하는데 혈안이 된 나머지 민가의 가축을 도둑질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회령의 한 소식통은 "군인들이 가축 습격과 도둑질로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주민들은 군대를 가리켜 ‘마적대’ ‘토벌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염소휴가를 가지 못하는 군인들에게는 염소가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동료는 휴가를 나가는데 염소를 바치지 못한 군인은 염소를 키워야 하는 신세여서다. 그래서 염소공양군(軍), 염소사육군(軍)이란 말도 나온다. 돈이 없어 사육군이 된 군인 입장에선 염소가 분풀이 대상으로 돌변하곤 한다. 성난 표정으로 염소를 몰고 가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선 염소 1마리로 갈리는 ‘운명’이 짜증난다는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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