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딜레마에 빠진 경제정책

중앙선데이 2011.06.11 23:46 222호 2면 지면보기
우스갯소리다. 유대인 아낙이 랍비를 찾아와서 온갖 고민을 하소연했다. 몇 시간이나 푸념을 늘어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속이 후련하네요. 두통이 싹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랍비가 되받았다. “웬걸요. 이제는 내 머리가 아파오는데….” 랍비의 천직이야 사람의 걱정을 듣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 아니던가. 그런 사람의 머리가 아픈 것쯤이야 뭐 그리 대수일까. 아무리 푸념해도 고통이 가시지 않고 남의 걱정에 내 골치만 아픈 경우가 숱한데 말이다. 지금 내가 그렇다. 뾰족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다. 가계부채와 저축은행 사태 때문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937조원이나 된다. 국내총생산(GDP)의 80%다. 규모도 문제지만, 146%나 되는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더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보다 더 높고 영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다. 가계발 경제위기가 우려되는 이유다. 설령 위기가 없다 해도 만성적인 소비 부진은 피할 수 없다. 질병으로 치면 당뇨병이다. 낫지도 않고, 평생 치료받아야 하는, 하지만 치료를 중단하면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는 병이다.

이미 골병 든 저축은행 사태도 더 심각해질 것이다. 부실이 워낙 심해 정부가 이미 마련해놓은 15조원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아무리 따져봐도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저축은행뿐 아니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많은 증권사들도 문제다. 정부가 저축은행을 손대기 시작하면 가계대출이 문제다. 은행 대출 여력이 줄고, 이미 빌려준 돈도 회수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고 구조조정을 안 할 수도 없다. 손 놓고 있다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질 것이라서다. 진퇴양난의 현안은 이뿐만 아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까지 4개월 연속 4%대다. 그나마 기업과 지자체의 팔을 비틀어 억지로 달성한 수치가 이 정도다. 하지만 억누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일단 터지면 지금까지 오르지 못한 것까지 한꺼번에 오를 것이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다시금 강조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금리를 선뜻 올릴 형편도 아니다. 가계부채 때문이다. 딜레마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줄곧 입에 달고 살았던 ‘선제적 조치’만 웬만큼 했더라도 이 지경이 되진 않았다. 가계부채 우려가 나온지가 언제인가. 한국은행 총재가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걱정거리”라며 공개적으로 언급한 게 1년4개월 전이었다. 또 금융감독 당국이 뒤늦게나마 저축은행 문제를 제기한 게 지난해 중반이었다. 이때부터라도 해결을 서둘렀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거다. 그러긴커녕 이 정부는 거꾸로 갔다. 더 강화해야 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는 오히려 풀었고, 서둘러 해결해야 할 저축은행 문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슬쩍 덮어놓았다. G20 정상회의가 문제였다. 1년8개월 전 G20을 서울에 유치했다며 비행기 안에서 만세 삼창을 불렀을 때 경고했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며 야단법석을 떨다가 이듬해 외환위기를 맞았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고. <2009년 10월 4일자 경제세상> 하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겉으론 늘 ‘선제’ 운운하지만, 실제론 미봉책으로 일관해온 이 정부이기에.

진퇴양난일 때는 좌고우면하지 않는 게 좋다. 정공법이 최선이다. 저축은행만이라도 확실하게 정리하자.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방침부터 철회하자.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키워 더 큰 화를 초래할 게 분명해서다. 노무현 정부 때도 부실 저축은행을 정리하지 않고 우량 저축은행에 인수시키는 편법을 썼다. 이번만은 달리 하자. 공적자금을 투입해 한번에 수술하고 정리하자. 속전속결이 으뜸이다. 충격이 걱정되겠지만 그래도 편법보다는 낫다. 금리는 더 올리자. 가계부채가 우려되겠지만 금리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금리는 인플레이션 억제에 더 맞는 칼이다. 하지만 어쩌랴. 큰 기대는 않는 게 좋지 싶다. 이번에도 적당히 덮은 후 다음 정부로 넘길 것 같아서다. 내년은 총선·대선이 길목을 지키는 정치 시즌이니 말이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