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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사회의 상생

중앙선데이 2011.06.11 23:13 222호 15면 지면보기
이른바 전문가 한 명이 배출되려면 본인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도 많은 비용이 든다. 의대 6년과 레지던트 과정 동안 잠자고 놀면서 편히 지낸 사람들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시생도 마찬가지다. 힘들게 전문가가 된 뒤에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학회나 연수에 참가하는 등 자기 관리도 계속해야 전문가 역량이 유지된다. 남의 생명과 재산과 명예를 다루는 직업이니 스트레스도 크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사이비들이 중요한 결정을 좌지우지하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온다. 전문가들이 존중받아야 사회가 보다 안정되게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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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어렵게 공부한 과정을 인정해 주고 그들의 지식에 대해 보상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제까지는 희소성 때문에 전문가들이 남보다 더 많이 누리고 존경받으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엔, 예컨대 판검사들을 정의가 아니라 권력을 섬기는 이들로 간주하고, 의사들은 돈이나 쫓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다수 법조인이 선한 사람을 보호하고, 의사들이 환자를 열심히 돌보고 있어도 사회의 시선이 차가워진 것을 단순히 전문가의 특권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만은 없다.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동종의 직업인하고만 어울리다 보면 근친상간이 유전병에 치명적인 것처럼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게 된다. 일반인의 눈에는 의사와 판검사들의 노력과 격무가 아니라 불친절하고 고압적인 태도만 보인다. 전문용어를 써 가면서 일방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거슬리고,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을 속여 자기들 잇속만 차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게 될 수 있다. 한 번이라도 검찰에 소환되거나 재판정에 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때 받은 자존심의 상처와 모멸감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실제로 조사받다 자살한 사람, 망가진 기업도 하나둘이 아니다.

의료 과오나 사고로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잃게 됐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험이 직간접으로 축적되다 보니 그들에 대한 사회의 특별대우가 과연 온당한지 묻게 된 것이다.

어떤 지식도 가치 중립적일 수 없는데도 전문가를 위한 교육 과정이 지나치게 ‘전문성’에만 중점을 둔 채 ‘인간’으로서 소양과 소통 능력을 심어 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의대나 법대는 자격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과 윤리 교육은 소홀히 한다. 출세만 강조하며 자녀를 키운 이기적 부모들이 배려하는 마음과 사회적 책임을 배워 줄 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일반인들의 비난을 받아도 반박하기 힘들 만큼 그동안 전문가들의 자정장치가 느슨했던 것도 사실이다. 환자나 의뢰인과 성관계나 돈 거래를 하는 등 윤리적 문제가 있다면 고소 여부나 실정법 저촉과 상관없이 지위와 자격증이 박탈돼야 한다. 선의를 몰라주는 사회를 원망하기에는 사회의 불신과 혐오감이 위험 수위에 온 것 같다. 정부와 언론이 교사·의사·법조인·기업가 등 특정 전문가 직업을 돌려가면서 분노의 표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며 남의 탓만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변해야 일반인들과 마음의 길을 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지 묻고 실천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 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는가. 전문인의 역량과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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