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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선서 이기면 다 이기는 것, 흔들리지 말라”

중앙선데이 2011.06.11 22:36 222호 12면 지면보기
4·11 총선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DJ는 당이 동요하거나 지지세력이 흩어지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였다. 4월 20일부터 2박3일간 광주와 전주를 방문해 호남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사진은 20일 호남 방문에 앞서 대전 국립묘지를 참배한 DJ와 이희호 여사. [중앙포토]
사람들은 흔히 DJ의 장악력을 과대평가한다. 평민당이 됐든 국민회의가 됐든 총재인 DJ가 한마디 하면 다들 꼼짝 못하고 쥐 죽은 듯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론 사실이다. DJ의 압도적 카리스마를 따라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웬만한 용기론 거기에 대항하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다. 하지만 정치판은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조금만 허점을 보이면 제2인자나 3인자가 어느새 치고 올라오는 맹수들의 세상 말이다. 그 속에서 끊임 없이 리더의 자리를 유지하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장성민 전 의원 인간 金大中 이야기<16>]발동 걸린 ‘DJP 연대’

1996년 4·11 총선에서 패배한 직후 국민회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YS의 실정(失政)에 대해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는데 결과적으로 DJ의 정계복귀에 대한 심판처럼 돼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히 서울에서 해방 이후 최초로 야당이 졌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4월 11일 저녁 일산 자택에서 선거결과를 지켜보던 DJ의 얼굴엔 실망감이 역력했다. 그는 밤늦게까지 선거결과에 따라 향후 정국이 어떻게 변할지 분석한 모든 가판 신문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대부분 국민회의가 총선에서 패배하면 DJ의 당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총선 이후 DJ는 JP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사진은 총선 나흘 뒤인 4월 15일 당시 장성민 비서가 작성한 ‘JP 활동 방향에 대한 전망 보고서’.
하지만 그런 상황을 용납할 DJ가 아니었다. 오전 2시30분 한밤중에 DJ의 지시가 떨어졌다. “당쪽에 연락해서 내일 아침 총재 주재로 선거대책위 전체 회의를 연다고 알리세요. 내일 얘기하겠지만 16일쯤 곧바로 당선자 모임을 열고 하루빨리 당을 정상체제로 가는 게 낫겠어요.” 당이 선거 패배의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DJ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12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조간신문을 뒤적이던 DJ가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왜 모든 언론은 국민회의가 패배했다고 보도하지요? 장 비서, 패배가 아니라 약진이란 표현을 쓰라고 언론에 요구하세요. 65석이 79석이 됐고 전국 58개 지역에서 3000표 차 이내의 초접전을 벌였는데 이게 민심이 아직 국민회의를 안 떠났다는 의미가 아니고 뭡니까.”

만일 패배를 인정하면 차기 대선 도전도 물 건너 갈 게 뻔했다. DJ의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든 국민회의가 진 게 아니라고 강조해야 했다. 13일엔 국민회의 김한길 대변인을 일산에 불렀다. DJ는 자신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으라고 했다. “신한국당이 170석에서 139석으로 준 것이 이긴 것이냐, 국민회의가 65석에서 79석이 된 게 진 것이냐. 뭐가 패배고 승리냐. 이걸 기조로 당 기자실에서 성명을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국민회의 내부에서조차 그걸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언론인 출신으로 DJ의 호감을 샀던 임채정 의원은 성격이 꽤 직설적이었다. 그는 당사에서 당선 축하인사를 받자 “축하는 무슨 축하. 당이 이렇게 됐는데”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조세형 부총재도 기자들과 만나 “호남표도 동요하고 있다”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이런 내용은 모두 DJ에게 보고됐다.

12일 아침에 DJ에게 “총재님, 선거운동 하느라 힘드셨는데 며칠 쉬고 나가시지요”라고 권했지만 답변은 단호했다. “모르는 소리. 당을 비워 두면 당원들이 침체에 빠지고 지지자들의 의욕이 떨어져요.” 당장 당사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13일 아침 동아일보에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됐다.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신한국당 이회창 고문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꼽혔다는 거였다. 서울은 32.2%, 충청 27.9%, 부산·경남 25.3%, 인천·경기 25.2%가 그렇게 답변했다. 호남에서만 DJ가 앞섰지만 29.6% 대 18.1%로 기대했던 만큼의 차이가 아니었다. 16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회의 당선자대회 분위기는 침울했다. DJ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농담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여기 정대철 부총재는 매번 당선되다 떨어졌으니 충격이 크겠지만 나는 의원선거에서 다섯 번,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이나 떨어진 낙선 전문가예요.”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그 다음에 했다. “나도 낙선 많이 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나 여기까지 왔다. 누가 봐도 이번 선거는 패배가 아니다. 79석을 가진 제1야당의 위치를 지켰다. 명년 대선에서 이기면 다 이기는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자다. 흔들림 없이 당을 운영할 작정이다.”

DJ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선거에선 질 수도 있다. 그러니 요란 떨지 마라. 게다가 진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내년 대선이다. 당을 흔드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 그런 얘길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었다. DJ는 이날 저녁 63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다. 거기선 좀 다른 분위기로 말했다. “대선 도전은 나 아니면 안 된다거나 내가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내 거취에는 초월해 있다. 국민 여론을 봐서 여러분과 상의해 거취를 결정하겠다.” 국민회의 내부는 확 군기를 잡았지만 기자들에게는 최대한 겸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물론 DJ의 속마음은 전자였다. 그 정도 시련으로 대통령을 포기했을 거면 정계 복귀도 안 했을 것이다. 4월 20일부터 2박3일간 광주 망월동 묘지와 전주를 방문한 것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호남의 동요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인생이란 게 흔히 그렇듯, 곤경에 처해 있던 DJ에게도 전혀 예상치 않던 돌파구가 생겼다. 느닷없이 청와대가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영수회담을 하자는 건 대통령인 YS가 DJ를 카운터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당시 DJ는 총선 패배로 힘겨운 처지였다. 그런데 왜 YS가 그런 시점에서 DJ를 만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동교동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내린 결론은 ‘DJ를 살려놓기 위해서’라는 거였다. 좀 엉뚱한 얘기 같지만 전혀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4·11 총선으로 DJ는 치명타를 입었다. DJ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확인됐다. 차기 대선에서 여당의 가장 쉬운 상대는 DJ다. 만일 DJ가 대선을 포기하고 제3 후보를 미는 사태가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DJ를 살려놔야 한다.’ 청와대 정무 파트에서 그런 판단을 하고 YS에게 영수회담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었는지 여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아무튼 현직 대통령 YS와 국민회의 총재 DJ의 영수회담은 4월 18일 낮 12시부터 청와대 본관2층 백악실에서 2시간10분 동안 열렸다. 5년 만에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메뉴는 물론 칼국수였다. 청와대를 다녀온 DJ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대통령, 총재 하는 경어를 쓰다가 간혹 과거의 친분으로 당신이란 칭호도 썼다. 김 대통령은 선거부정으로 상당수 당선자가 의원직을 상실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 안 가리고 공정하게 한다고 했다.” 그렇게 설명했다.

하루 뒤인 19일에는 YS와 JP(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영수회담을 했다. DJ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혹시 두 사람이 다시 손을 잡는 일이 생긴다면 DJ로선 백약이 무효일 게 뻔했다. 하지만 YS는 이 자리에서 내각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JP는 “김 대통령 퇴임 후에 할 테니 이해하라. 야권 공조는 확실히 하겠다”고 했다. DJ로선 만세를 부를 일이었다.

어차피 DJ와 JP는 동병상련이었다. 총선 이틀 뒤 JP는 “내각제에 뜻을 같이한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걸 보고받은 DJ는 나에게 “자민련 사람들과 기자들을 만나 JP의 향후 동향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부리나케 취재해 15일에 보고서를 올렸다. ‘4·11 총선 이후 향후 JP 활동방향에 대한 전망 보고서’라는 제목이었다. ▶JP가 당분간 YS와 협력하지 않을 것이며 ▶내각제를 고리로 연합을 제의할 가능성 있고 ▶연합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개헌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며 ▶JP와 전략적인 연대와 공조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고를 받은 DJ는 주저했다. “나도 그렇게 봐요. 그런데 당내에서 반발이 올 수 있어요.”

약간은 어정쩡한 태도로 서로 눈치만 보던 DJ와 JP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일이 5월 30일에 터졌다.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서훈 의원이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었지만 과반을 채우지 못하자 무소속에 대한 영입을 강행한 것이다.

DJ와 JP 입장에선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국민회의 사무총장 한광옥과 자민련 사무총장 김용환은 ‘총선민의수호 야당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6월 5일에 국회가 개회했지만 두 당 의원들은 참석을 거부했다. 6월 18일 DJ가 경기대 수원캠퍼스 행정대학원 초청강연에서 치고 나갔다. “15대 국회에서 의원내각제 개헌은 어렵지만 16대 국회에선 국민이 원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헌법은 내각제 요소를 가진 혼합형태다. 앞으로 야권공조를 하면 이것을 활용해 거국 내각과 연립내각도 할 수 있다.”

그러자 이틀 뒤에는 JP가 반응을 보였다. 대전 한남대 초청특강에서다. “내각제 개헌 추진이 당장 불가능하면 대통령 선거는 현행대로 치르고 그 이후 제15대 국회 임기 중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겠다.”

이런 상황까지 오면 4·11 총선 결과니, 그에 대한 책임이니 하는 건 이미 지나간 얘기였다. 정국의 핵심은 대선을 앞두고 DJ와 JP가 어떻게 합종연횡(合從連橫)을 하면서 정국을 요리해 나가느냐였다. DJP는 진화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상대편 선수는 신한국당의 이회창도 박찬종도 아니었다. 바로 청와대의 Y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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