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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이면 中古 장만 … 바람을 부리고 파도와 맞선다

중앙선데이 2011.06.11 22:33 222호 20면 지면보기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열린 코리아매치컵 국제요트대회 첫날 예선에서 2대의 요트가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뒤쪽에 보이는 제부도 풍력발전기 날개는 요트 돛대와 재질이 같고 모양도 흡사하다. 화성=조용철 기자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 2011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가 지난 8일부터 닷새간 열리고 있다. 이 대회는 국제요트연맹(ISAF)이 승인한 월드매치레이싱투어(WMRT)의 네 번째 시리즈다. WMRT는 160년 역사의 아메리카스컵, 요트 하나로 오대양을 일주하는 볼보오션레이스와 함께 3대 국제 요트대회로 꼽힌다. 세계 정상급 12개 팀이 출전해 국내에서 제작한 ‘KM36’ 보트를 타고 동등한 조건에서 기량을 겨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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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룬 배 2대가 일대일로 맞대결을 하면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이 펼쳐지고, 배끼리 충돌하며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조선과 자동차 기술 결합하면 ‘막강’
취재용 보트를 타고 경기가 열리는 바다로 나갔다. 스키퍼(선장)의 지휘 아래 네 명의 선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메인 세일(큰 돛)과 집 세일(작은 돛)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바람을 타야 요트는 앞으로 나간다. 스키퍼의 고함 소리, 선원들의 복창, 바람이 돛을 통과하는 소리만이 바다에 울려퍼진다. 반환점이 가까워지자 선수들의 움직임이 한층 민첩해진다. 바람의 방향과 각도, 강도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하고, 상대의 움직임까지 체크해야 한다. 반환점을 돌면서 ‘촤르르륵’ 소리와 함께 거대한 제네이커(뒷바람을 받는 돛)가 펴졌다. 제네이커가 바람을 받으면서 요트는 속도를 내며 결승점을 향해 달린다. 요트 주위로 심판을 태운 보트가 돌아다닌다. 심판은 반칙이 일어나는 순간 곧바로 판정을 내린다. 반칙 판정을 받은 배는 그 자리에서 360도 회전하는 벌칙을 받아야 한다.

결승점이 가까워지면서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목소리가 커진다. 이 대회 예선은 하이라이트로 편집돼 전 세계 140개국에서 방송된다. 결승전은 80개국에 생중계된다고 한다.

전곡항은 경기도가 ‘대한민국 요트의 메카’를 만들겠다며 2009년 조성한 마리나(요트 정박장) 겸 요트 경기장이다. 제부도와 누에섬 등 아기자기한 섬들을 거느리고 있다. 바다 건너 제부도에서 풍력발전기가 한가롭게 돌아가며 운치를 돋운다. 요트의 돛대와 풍력발전기 날개는 재질(탄소 소재)과 작동 원리가 같다.

요트는 고급 레저스포츠임과 동시에 큰 잠재력을 가진 산업이다. 전 세계 레저 보트 시장은 한 해 500억 달러(약 54조원)에 달한다. 국내에는 30여 개의 요트 제조업체가 있다. 대부분 수입한 부품을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요트 제조 시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5년 전 100대 남짓이었던 크루즈 요트가 현재는 500대를 넘는다. 주말에는 전곡항 마리나에 배 댈 데가 없을 정도다.

이번 대회에 사용되는 KM36 보트를 제작한 곳은 ㈜어드밴스드마린테크다. 이 회사의 이상홍 대표는 “레저용 보트는 선박 제조보다는 자동차 제조 메커니즘에 가깝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자동차용 엔진을 소형 선박용 엔진으로 바꿔 만드는 업체를 설립했다. 우리는 조선 최강국이고 자동차 기술도 정상권이다. 머지않아 세계 최고의 요트 제조 국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 조선공학과에 다니면서 요트 동아리 활동을 했다. 배를 타다 보니 ‘내가 배를 직접 만들어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 재학 중 창업을 했다. 그는 “요트가 지식경제부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지정돼 기술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요트는 제조업이라기보다 문화산업에 가깝다. 소득이 높아지고 해양레저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디자인과 마케팅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녀노소에 장애인도 함께 어울려”
현재 국내 요트 동호인은 3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바다에 면한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마리나를 짓고 요트 교실을 열어 배우려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서울에서는 여의도선착장에 있는 서울요트아카데미가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이용료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딩기(1인승)는 1시간에 4000원, 크루즈(6∼8인승)는 1만5000원 선이다. 요트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수준별로 월 5만∼60만원을 내고 전문 강사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대한요트협회 전무 출신인 이필성 서울요트아카데미 원장은 “요트는 막연히 비쌀 거라는 선입견, 물에 대한 두려움 등이 요트에 접근하기 힘든 요인이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적은 비용으로 안전하게 물과 하나 되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남녀노소는 물론 장애인도 함께 어울리며, 특히 청소년에게 호연지기를 키워줄 수 있는 게 요트”라고 소개했다.

초보자는 바람과 파도가 세지 않은 강에서 기본을 배운 뒤 바다에 도전하는 게 좋다고 한다. 올 10월 경인 아라뱃길이 열리면 한강에서 출발해 서해로 빠져나와 남해와 동해를 도는 코스가 만들어진다.

이필성 원장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강을 밖에서만 봐 왔다. 요트를 타면 한강 안에서 물과 바람결을 느끼며 서울을 바라볼 수 있다. 이건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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