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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을 닮은 아기 붓다 ...데즈카, 불교의 세계를 말하다

중앙선데이 2011.06.11 15:02 222호 4면 지면보기
1 데즈카 오사무.
‘철완 아톰’ ‘정글대제’를 그린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手塚治.1928~89)는 생애 후반 10여 년을 붓다의 삶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1972년 소년만화잡지 ‘희망의 친구’에 연재를 시작해 83년에 마무리한 만화 ‘붓다(ブッダ)’다. 한국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과 미국·유럽 등지에서 호평을 받으며 현재까지 약 2000만 부가 팔려나갔다.생명·전쟁·환경·미래 등의 주제를 다루며 인류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보여준 데즈카의 작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가 붓다의 생애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듯하다. 한 나라의 왕자라는 높은 신분으로 태어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해 마침내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붓다의 생애는 데즈카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문제의식과 이어져 있다. 산문집 ‘아톰의 슬픔’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전, 26일까지 도쿄 국립박물관

“아톰을 그리기 시작한 1951~52년 무렵 교사와 학부모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린이들의 적’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 맹렬한 비판의 폭풍 속에서도 만화를 그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로봇의 격렬한 싸움을 그린다 해도 내 주제는 항상 자연에 뿌리를 둔 ‘생명의 존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붓다의 생애를 통해 ‘생명의 존엄’ 문제를 파고든 데즈카의 ‘붓다’가 최근 일본에서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만화가 완성된 지 28년 만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3부작 중 1편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붉은 사막이여, 아름답게’가 지난달 28일 화제 속에 개봉됐다. 영화 개봉에 앞서 도쿄 우에노 도쿄국립박물관에서는 4월 26일부터 6월 26일까지 데즈카의 친필 원고와 함께 박물관이 소장한 불상을 나란히 선보이는 특별전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전(www.budda-tezuka.com)’이 열리고 있다. 수천 년 역사의 문화유산인 불상과 일본 대중문화의 정수인 만화를 동일한 공간에서 전시하는 최초의 시도다.

2 특별전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전39 이미지,‘불입상(佛立像)39,파키스탄·페샤와르 주변, 쿠샨왕조, 2~3세기,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촬영 / 카키모토 준코(파시몬)39TEZUKA PRODUCTIONS
도쿄국립박물관 최초의 만화 전시
지난 7일 오전 도쿄국립박물관에는 가랑비가 흩뿌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십여 명이 줄을 섰다. 단체관람을 온 중학생부터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까지 다양했다. ‘만화 강국’ 일본이지만 국보를 다수 소장한 대표 박물관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만화 전시가 열린 것은 1872년 박물관 개관 이래 처음이다. 박물관 측은 “만화는 현재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분야로, 예술성과 철학을 담고 있는 데즈카의 만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불상이라는 문화유산을 조금 더 친밀하게 느끼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데즈카의 만화 ‘붓다’의 대표 장면과 불상들을 나란히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붓다의 생애를 돌아보도록 구성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히말라야에서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나 29세에 출가해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선교 활동을 진행하다 80세에 입적한 붓다의 삶이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불상과 부조 약 20점과 ‘붓다’의 친필 원화 52점을 통해 생생히 되살아난다. 전시된 불상 중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문화유산도 여럿이다. 붓다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붓다를 낳는 순간을 포착한 중요문화재 ‘마야부인상’은 고대 일본 금동불상의 수작이다. 출가 전 각종 장신구로 화려하게 꾸민 왕자 싯다르타를 묘사한 보살입상(菩薩立像)과 깨달음 후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검박한 외양의 ‘불입상(佛立像)’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오른손을 베고 누워 열반에 든 붓다의 모습을 담은 나라 지역 오카데라 소장품 ‘불열반상(佛涅槃像)’은 그 압도적인 크기와 함께 만화의 열반 장면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해 감탄을 자아낸다.

불상과 나란히 놓인 ‘붓다’의 친필 원고들은 전시장에 친근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더한다. 아톰과 닮은 귀여운 아기 붓다의 원화에서부터 탄생부터 입멸까지의 ‘결정적 장면’이 담긴 만화 페이지 확대본, ‘붓다’ 단행본 1~14권 표지, 만화 속 다양한 캐릭터 친필본 등이 만화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전시회에서 만난 사이토 유카리(28)는 “어릴 때 데즈카의 ‘붓다’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실제 불상과 함께 감상하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으로 되살아난 ‘붓다’
데즈카는 만화 ‘붓다’를 그리기 위해 수많은 불경을 읽고 불상을 찾아다니며 공부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를 배치해 자신만의 압도적인 드라마를 구축해 냈다. 그렇게 탄생한 만화 ‘붓다’는 단순한 위인전이 아닌, 사랑과 전쟁과 모험이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시다. 그의 작품에는 최하층인 수드라의 신분을 숨기고 최고의 전사가 되는 소년 차푸라나, 싯다르타의 첫사랑 미게라 등 역사상에는 기록이 없는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가 첨가됐다.

총 3부작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만화의 장면을 그대로 살리면서 왕자 싯다르타와 차푸라의 만남 등 새로운 구성을 추가했다. 요시오카 히데타카, 사카이 마사토 등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시리즈 1편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붉은 사막이여, 아름답게’는 8월 말 한국에서도 개봉할 계획이다.

데즈카의 ‘붓다’에 쏠리는 높은 관심은 현재 일본의 사회상과도 관련이 깊다.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선 종교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지진과 쓰나미로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이들,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됐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전시장의 한 구석, ‘붓다’의 명대사가 적혀 있는 벽 앞에는 오랜 시간 이를 음미하는 사람들, 문구를 수첩에 옮겨 적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생명의 근원은 모두 연결돼 있다. 우리는 모두 형제요, 평등하다.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그리고 모두 괴로움과 고민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다.”(데즈카 오사무 전집 6부 3장 중)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 그것은 정해진 것이다. 그러니 모두 게으름 없이 정진(精進)하시오. 나는 지금 열반에 들어가오.”(‘붓다’ 14권 최종장 ‘최후의 여로’ 중)



중앙일보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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