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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혼자 통화하는 여성 보면 지금도 겁나”

중앙일보 2011.06.11 03: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아직 그곳(사건현장)을 지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의동 묻지마 살인’ 희생자 오빠

 8일 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만난 류모(40)씨는 “ 동생 얼굴을 영영 볼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류씨의 막내 여동생(32)은 지난 2일 오후 6시10분쯤 류씨와 함께 살던 집 근처에서 동네 주민 이모(54)씨가 등 뒤에서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범행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뒷모습이 가출한 이씨의 아내와 닮았다는 것이었다. 뉴스에서나 봤던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지병이 있었거나, 하다못해 교통사고가 났다면 차라리…평소엔 매일 밤 9시는 넘어야 집에 왔는데, 그날은 본사 교육을 받고 평소보다 일찍 들어오는 길이었어요.”



 사건이 일어난 날 류씨는 작은아버지 댁에 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쓰러진 동생 휴대전화를 누군가 주워서 집에 전화를 걸었나 봐요.” 병원에 달려갔지만 동생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소식을 듣고 상경한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류씨를 붙잡고 울다가 실신했다.



 2남3녀 중 넷째인 동생은 남매 중 가장 싹싹했다. 동생은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두 언니가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10년이 넘도록 백화점 화장품 판매사원 등으로 일하면서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다. 고향 부모님께도 수시로 용돈을 보냈다. “부모님께 선물을 부칠 때는 매직펜으로 하나하나 무슨 용도인지를 적어서 보내 드렸어요.”



 지난 5일 가족은 충남 서산의 한 야산에서 수목장(樹木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류씨는 “동생이 5일 조카 돌잔치 자리에서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친구를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여동생은 숨지기 직전까지 휴대전화로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 신모씨는 경찰 조사에서 “통화 중 ‘아악!’ 하는 비명 소리가 나 수십 차례 전화를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8일 기자가 신씨에게 전화를 걸자 괴로운 듯 “그 일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찰은 9일 범인 이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류씨는 “이젠 길거리에서 통화하는 사람이나 혼자 다니는 젊은 여성을 보면 겁이 난다”고 했다.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합니다. 범인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동생에게 약속했습니다.”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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