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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6)

중앙일보 2011.06.11 01:30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그것은 만자가 아니라 십자가다”
1. 청산별곡 ⑥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불바다로 변한 안화사 경내를 빠져나왔다. 빽빽한 소나무 숲에 다다라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말들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서 머뭇거릴 틈이 없다. 다시 박차를 가하는데 말들이 주춤거렸다. 나무둥치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솔방울들이 후두두 떨어지는가 싶더니 두억시니 같은 몽골병이 나타났다. 몽골병은 도깨비불처럼 소나무 숲 사이를 순식간에 날아와 우리 앞을 막아섰다. 말도 우리도 주박(呪縛)에 걸린 듯 꼼짝달싹할 수조차 없었다. 겁에 질린 말 잔등이 푸들푸들 떨렸다.



 “옴치림!”



 나는 쩌렁쩌렁 소리 나게 호신진언을 외웠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극도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방편이었다. 진언은 통했다. 단단히 걸렸던 주박에서 풀린 듯 나를 태운 말이 앞발을 들면서 몽골병과 맞섰다. 그 찰나 스승을 태운 말이 비호(飛虎)처럼 내달아 몽골병의 뒤로 파고들었다. 장정이 칼날을 휘둘렀다. 몽골병은 풀잎처럼 쓰러졌다. 내가 탄 말은 히히힝- 울부짖으며 적의 시신을 뛰어넘었다.



 다시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적을 죽여야 우리가 살길이 트였다. 살생만이 우리의 명줄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바랐다. 스승과 나를 태운 장정들의 칼날이 여지없이 적의 생명줄을 끊어놓기를. 이 순간 나는 승려가 아니었다. 마귀나 나찰처럼 살생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 내 스승이 살기 위해 적들이 죽어 나자빠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천운이었을까. 우리는 사람을 죽이고 튼 길로 무사히 송림을 빠져나와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추격자들이 따라붙었다. 나는 똥끝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적들을 태운 말들은 날쌨고 둘씩이나 탄 우리 말들은 달음박질이 둔했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 못 가서 붙잡히게 될 터였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들판을 가로질러온 그 바람은 정확히 스승과 내 뒤에서 칼바람으로 돌변해 적병들을 베어나갔다. 고려인 복장을 한 기마대가 출현했던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번뜩이는 눈빛, 바람을 가르는 날렵한 동작은 지상의 군대가 아니었다. 신병(神兵)과도 같은 저 고려인들은 누구일까. 복장으로 봐서 절대 관군은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추격자는 없었다. 고려인 기마대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우리는 먼동이 트는 동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등 뒤 하늘이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송악산 아래 절집 안화사가 불타면서 만든 노을이었다. 칼바람이 뿌린 적들의 피가 섞여서일까. 동녘 하늘의 노을보다 그 반대편 서녘 하늘이 더 붉고 선연했다. 그랬다. 전쟁은 이렇듯 하늘의 기운마저 바꾸는 것이었다.



 말이 몸을 날려 실개천을 뛰어넘었다. 그 사품에 장정의 등짝으로 내 몸이 쏠렸다.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장정의 허리를 감았던 왼손을 풀고 어깨를 주물렀다. 끈적거리는 게 묻어났다. 여명 속에서도 그게 핏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이었다. 언제 다친 것일까. 아까 몽골병이 내리치는 언월도를 피하느라 스승을 끌어안고 숲 속으로 몸을 날릴 때 돌에 찍힌 것 같았다. 나는 상처 부위를 손으로 압박했다. 내 몸은 땀내 전 장정의 등짝에 더 밀착됐다. 등이 허전했다. 그랬다. 황급히 빠져나오느라 바랑을 챙기지 못했음을 그제야 알아챘다. 앞서 달려가는 스승의 등도 비어 있었다. 요사채 책상에 펼쳐놓고 온 『서청미시소경』과 『경교삼위몽도찬』은 지옥불세례를 면치 못했을 것 같았다. 당나라로부터 고구려를 거쳐 고려국에 전해진 그 귀중한 문헌이 우리 때문에 사라지게 되었다. 인간의 손길은 그래서 위험하다. 차라리 금동부처 복장이나 석탑 안에 봉안됐더라면 보다 안전했을 터였다. 아니, 직제학 노인의 동굴 장서각에 놔뒀더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거였다.



 “저기 나루터에서 아침을 먹고 바다를 건너시오.”



 장정이 뒤에다 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장정의 등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화도가 손에 잡힐 거리에 떠밀려 와 있었다. 사흘 만에 되돌아가는 길이 황천길만큼이나 멀고 험했다. 나루터 주막집에서 말이 멈췄다.



 “아니, 당신은…?”



 “그렇소. 거지 등짝에 붙어서 살아 돌아온 게 못마땅하오?”



 그는 어제 낮 궁성의 내제석원에서 본 거지 왕초였다. 봉두난발을 삼베 끈으로 질끈 동여맸고 칼을 찬 것만 달랐다.



 “어떻게 된 거죠?”



 “보이는 그대로요. 배고프면 동냥질하고 적이 나타나면 말 타고 칼 휘두르고. 뭐가 잘못인 게요? 전쟁통에 산과 바다로 숨어들지 않고 살아가는 묘법인데.”



 나는 스승의 안전을 확인하면서 그쪽 장정의 행색을 살폈다. 송충이 눈썹에 차돌같이 단단하게 생긴 그는 거지 무리 속에서 본 얼굴이 아니었다. 이자는 누구이며 아까 들판에서 추적자들을 쓸어버린 무리는 누구인가.



 “궁금한 건 나중에 풀고 우선은 응급치료부터 받아야겠소. 봉놋방으로 들어갑시다.”



 짙은 눈썹의 사내가 말안장 뒤에 매단 가죽주머니를 풀며 내게 말했다. 그 경황 중에도 어느새 내 상처를 알아챘던가 보다. 스승이 다가와 내 어깨를 살폈다. 댓바람에 들이닥친 우리 일행을 맞는 주막집 주인 내외는 태연했다. 거지 왕초는 물론 송충이 눈썹과도 익히 알고 지내는 눈치들이었다. 빈 봉놋방에 웃통을 벗고 누웠다. 어깨가 몹시 욱신거리고 두통이 밀려왔다. 열까지 뻗쳤다.



 “상처도 상처지만 어깨뼈가 부러진 것 같소. 강화도로 건너가면 보름가량은 어깨를 쓰지 말아야 하오.”



 고약을 붙여준 그는 대나무를 구해와 어깻죽지를 고정시키고 헝겊으로 동여맸다. 나는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선친이 꿈길로 찾아왔다. 아련한 기억 속에 개켜져 있는 선친의 손은 해사했지만 메마르고 차가웠다. 그토록 매달려왔던 과거에 급제하자 선친은 식솔을 거느리고 향촌을 떠나와 개경에 둥지를 틀었다. 백부 유승단의 보살핌이 있긴 했지만 남루한 생활이었다. 개경에서 문사들과 사귀며 관직에 나갈 날을 기다리던 선친은 점점 초조해져 갔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삼 년이 지나도 임명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명권자는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가 집정 최이였다.



 “끼니가 곤란하던 당대의 문사 이규보는 최충헌을 찾아가 충성 맹세를 했다. 그때서야 막혔던 벼슬길이 열렸지. 아우도 그리해야지 않겠는가.”



 워낙 자존심이 강한 백부였지만 망가져가는 내 선친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최이는 그의 아버지 최충헌보다 관후한 성정이었다. 구차하더라도 충성 맹세만 제대로 하면 얼마든지 벼슬길이 열린다고 보았던 것이다.



 “형님, 무신정권에 빌붙어 사느니 차라리 향촌으로 돌아가 농사나 짓겠습니다.”



 선친은 최씨 무인정권이 던지는 돌에 맞았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그저 때가 사나웠을 뿐이었다. 향촌인 경상도 구미로 낙향한 선친은 제풀에 가슴을 찢다가 화병을 얻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 생을 마감했다. 내가 어렸을 적의 일이다. 나는 통독하던 유가경전들을 집어던지고 공산의 부인사에 들어가 행자 노릇을 했다. 몽골군이 쳐들어오기 훨씬 전이었다.



 스승이 나를 불러올린 건 강화도에 대장도감이 세워지면서부터였다. 물론 나는 그때 승과에 합격해 말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기 스승은 의상대사와 균여대사로 이어지는 계보에 속했다. 하지만 나는 원효대사와 대각국사 의천스님 계보였다. 두 계보 모두 화엄종이라도 그 성향이 사뭇 달랐다. 수기 스승 계보가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면 내가 속한 계보는 무신란 이전의 문벌세력과 맥이 닿아 있었다. 그럴지라도 수기 스승은 나의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곧 날이 저물겠구나.”



 내가 눈을 떴을 때 방 안에는 수기 스승 혼자뿐이었다. 세숫대야에 수건을 적셔 내 이마의 열을 내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콧날이 시큰거렸다.



 “어서 바다를 건너죠.”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칼로 저미는 것 같은 어깨 통증을 느끼고 도로 누웠다.



 “힘들면 예서 자고 내일 건너자.”



 “아닙니다.”



 나는 왼팔로 방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나저나 경교 문헌들이 사라지게 됐네요.”



 “아쉬워할 것 없다. 너와 내가 내용을 파악했질 않느냐. 책이란 보관에만 치중할 장식물이 아니다. 펼쳐보고 연구하는 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스승은 이미 읽어낸 그 경교 문헌에 특별한 가치를 두고 있지 않는 듯 보였다. 사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정말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를 도와준 거지 왕초와 송충이 눈썹 사내, 바람처럼 나타나 추격자들을 거꾸러뜨린 사람들의 정체였다. 거지꼴을 한 자가 어떻게 기마병으로 변신할 수 있단 말인가. 몽골군이 점령한 개경에 남아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던 고려인들이었다. 그 기세등등하던 최씨 무인정권 세력들조차 감히 엄두도 못 내는 일을 어떻게 그들이 해내고 있느냐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잘못 살아온 건 아닌 것 같구나.”



 스승은 장정들이 출현해 우리 목숨을 구해준 걸 그렇게 여기고 말았다. 당신이라고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분명치 않으면 매사를 그냥 그대로 던져두고 다음의 추이를 기다리는 게 스승의 일 처리 방식이었다. 결코 안달하는 법이 없었다.



 석양을 등지고 승천포를 건넜다. 장정들이 주선해 놓은 배를 탔음은 물론이다. 초파일 연등행사를 준비 중인 궁성은 부산했다.



 선원사로 돌아오자마자 스승은 대장도감 사무소로 직행했다. 죽음의 경계를 밟았다가 극적으로 살아 돌아오면서 스승은 복잡한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한 듯했다. 엉뚱하던 마리아와 이수 판화는 이번에 경교 문헌을 열람하면서 가닥이 잡혔다. 추가로 보내온 여덟 장의 그림들이 바로 경교를 표현한 것임을 알게 된 이상, 그것들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스승은 김승이 새겨 올린 경판들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굳이 판당 시렁에 올려놓은 경판들을 끌어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경판이 올라오자마자 인출해 놓은 인쇄뭉치를 펼쳐 보면 되었기 때문이다.



 수기 스승이 내 방으로 건너왔다. 나는 부러진 어깨뼈가 붙기를 기다리며 쉬엄쉬엄 세 권의 『대장목록』 교정을 보고 있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거라.”



 스승은 화엄경 변상도 한 장을 펼쳐 보였다.



 “지난번에 김승이라는 작자가 보낸 8장의 판화 중 하나로군요.”



 마리아가 이수를 낳은 이야기와 세존 부활 승천 내용이 담긴 그림 말고 나머지 6장은 화엄경이나 금강경 변상도들이었다. 그 변상도들 가운데 한 장인데 뭘 자세히 보라는 것일까.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겠느냐?”



 “예. 무슨….”



 “그럼 이 그림도 보아라.”



 스승이 두 번째로 펼쳐 보인 건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 판화 가운데 한 장이었다. 북송의 태종이 찬술한 시편(詩篇)이었다. 불교 비법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초조대장경 변상도보다 더 완벽하네요.”



 나는 김승이라는 자의 판각 솜씨를 예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서로운 구름과 도교적인 배경을 담고 있는 판화다. 설산(雪山)에서 6년간 고행하고 진리를 깨달은 석가세존이 세상에 나와 설법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천상의 꽃비가 지상에 내리게 한 역정을 환상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너 역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구나.”



 스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룩하고 장엄하기만 합니다.”



 “과연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존재로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여기를 똑바로 보거라.”



 스승이 두 장의 판화를 맞대놓고서 번갈아 가며 석가세존의 목주름 부위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목걸이에 걸린 만(卍)자 형상을 표현한 것이로군요.”



 “너는 이게 만자로 보이느냐. 이건 꼬부라진 갈고리 문양이 아니라 곧은 십자가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이 작은 그림에 갈고리 문양까지 완벽히 새길 수야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는 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한 획 한 획 새겼다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흠결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럼 밑그림이 된 이 초조대장경 판화를 보아라.”



 스승은 똑같은 그림이되 초조대장경 경판으로 인출한 변상도를 펼쳐 보였다. 그것은 몽골군에 의해 불태워지기 전, 인출해 놓았던 『어제비장전』 판화였다. 나는 석가세존의 목주름 부위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목걸이가 없었다. 물론 갈고리 혹은 십자가 모양의 형상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이 십자가 형상은 바로 경교의 표지이다!”



 나는 머리에 번갯불이 일어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수기 스승의 말씀처럼 서방 멀리 대식국에서 유래하여 대진국에서 다듬어진 종교가 경교다. 불교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그 경교 표지를 왜 이 거룩한 팔만대장경 경판 안에 새겨 넣은 것일까. 초조대장경에는 없던 그것을. 김승이라는 자 너무 발칙하다. 어떻게 감히 부처님의 말씀을 담아낸 이 성스러운 대장경판에 이처럼 불경스러운 장난을 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명백한 모독이다.



 “보통 일이 아니네요. 대체 그 자가 노리는 게 뭘까요?”



 나는 지금껏 우리를 우롱해온 그가 괘씸하면서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은 전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일을 그가 오래전부터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자를 만나봐야겠다!”



 수기 스승은 특유의 날카로운 매 눈을 번뜩였다. 나는 벽란도 가는 배 위에서 이 전쟁이 꼭두각시놀음일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추정했었다. 지금 김승이라는 자가 꾸미고 있는 일도 그 꼭두각시놀음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내 안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글= 소설가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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