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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중립지켜 DJ 당선”

중앙일보 2011.06.11 01:05 종합 10면 지면보기



이강래, 대선 비화 『12월 19일 정권교체의 첫날』 펴내





1997년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둔 10월,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은 “김대중(DJ) 후보가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차명 관리하고 있다”고 폭로한 뒤 검찰에 DJ를 고소했었다. 이때 DJ의 참모였던 민주당 이강래(사진) 의원은 김영삼(YS) 대통령의 김광일 정치특보를 비밀리에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은 ‘어떤 경우라도 검찰 수사를 막아달라’는 DJ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후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DJ 비자금 의혹 사건의 수사를 대선 후로 유보했다. 이 의원이 10일 출간한 저서 『12월 19일 정권교체의 첫날』에 담긴 당시의 뒷얘기다. 이 의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당시 YS가 검찰에 수사 지시를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골이 송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98년 DJ가 집권한 뒤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취임했고, 이해 5월 인사차 상도동으로 YS를 찾았더니 YS가 “내가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이 수석은 이것을 꼭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97년 대선이 끝난 지 14년이 지난 지금 책을 쓴 이유는 뭔가.



 “DJ는 내겐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분이다. 그런데 2000년 4월, 16대 총선 때 DJ가 내게 공천을 주지 않아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DJ 서거 당시 그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선 뭔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책 제목이 ‘12월 19일’인 이유는.



 “이 책은 DJ가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92년 12월 19일부터 97년 대선(12월 18일)에서 승리해 당선자로서의 첫날인 그해 12월 19일까지 5년간의 기록이다. DJ가 시련을 거쳐 정권교체를 이루는 과정을 글로 남기려 했다.”



 이 의원은 저서에서 “대선 한 달 전인 11월 당시 만 73세였던 DJ의 ‘건강’ 시비를 종식시키기 위해 건강검진을 하고 이를 공개하는 방안을 DJ에게 보고했는데 이를 듣던 DJ는 난처한 표정으로 묵묵부답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DJ와 이희호 여사, 주치의인 장석일 성애병원 내과 과장과 나만이 아는 비밀이 있다”며 “DJ는 신장 기능이 다소 약해져 (검진에서) 요산 수치가 약간 높게 나올 수 있는 걸 걱정했었다”고 회고했다. 이 의원은 “결국 비밀리에 진행한 세브란스병원의 임상병리 검사에서 결과가 잘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마치 합격통지서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1995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민주당에선 서울시장 후보로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영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가장 우세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계 복귀(95년 7월)를 노리고 있던 민주당의 실질적인 ‘오너’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만은 이에 대해 “냉담했다”고 한다. 이유가 있었다. “이 전 총리를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야심이 만만치 않은 인물이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시장보다 대통령선거에 더 관심이 클 것”이라며 영입이 성사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고 이 의원은 전했다. DJ의 예상대로 이회창 전 총리는 97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DJ와 대권을 놓고 겨루게 된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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