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표 가문…그분들이 세운 신흥무관학교 100년

중앙일보 2011.06.11 00:14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상룡·이회영 선생 독립정신 되새기는 기념식 열려



10일 서울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야외 특설무대에서 열린‘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어린이합창단이 기념공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의 기지이자 독립군 양성소 역할을 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10일 오후 4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잔디광장에서 열렸다. 100주년 기념사업회(공동대표 윤경로·김상웅·전기호·서중석·허남성·한용원)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등 공동대표 6명과 박승춘 보훈처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정동영 의원, 시민 등 600여 명이 참석해 신흥무관학교에 깃든 선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되새겼다.









이상룡 선생(左), 이회영 선생(右)



 1911년 6월 10일 중국 지린성 유하현에서 문을 연 신흥무관학교는 경북 안동 두 명문가가 배출한 지사들의 희생이 바탕이 됐다. 역사학의 명가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과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 집안이다. 이상룡·이회영 선생은 신민회가 ‘해외 독립기지를 건설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무관학교를 설립하자’고 결의한 1910년과 이듬해 각각 일가를 이끌고 만주 망명 길에 올랐다. 막대한 가산을 정리해 해외 독립운동의 자치기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보탰고 여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을미의병에도 참여했던 이상룡 선생은 99칸 종택(宗宅)과 수많은 전답을 남겨둔 채 망명했고,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까지 지냈다. 32년 사망할 때까지 갈라진 독립운동계의 통합에 헌신했던 이상룡 선생의 5촌 이내 친인척 9명이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다.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 이항증씨도 이날 행사에 참가했다.



 안동에서 유림 인사들과 근대 계몽운동을 하던 이회영 선생은 마흔셋에 망명했다. 이회영의 6형제 가운데 5명이 독립운동을 하다 고문사하거나 고난 속에 여생을 마쳤다. 이회영 선생도 1932년 65세로 중국 여순 감옥에서 옥사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일제 탄압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3500명의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다. 배출된 독립군은 청산리전투·봉오동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3·1운동 뒤에는 지청천·이범석 장군 등 뛰어난 무관들이 합류해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윤경로 대표는 기념사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우리 군의 뿌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정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