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김정일의 잦은 ‘중국 마실’

중앙일보 2011.06.11 00:06 종합 30면 지면보기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불과 1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세 번이나 다녀갔다. 북·중 교류사에 전례가 없는 빈도다.



 세 번 연속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이번 방중이 앞선 두 차례 방중과는 크게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건강이 놀랄 정도로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5월과 8월에는 병색이 짙었는데, 이번에는 볼에 살이 오르고 얼굴에 홍조가 보일 정도였다. 2008년 8월 쓰러진 뒤 건강 때문에 조속히 후계자를 선정하고 다급히 권력을 이양해야 할 것이라던 외부 관측을 무색하게 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 기간에 베이징을 찾은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 점을 간파해 정곡을 찔렀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대북 정보 판단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금세 쓰러질 것처럼 여겨졌는데 알고 보니 쌩쌩하더라.”



 김 지사는 “(이명박 정부는)김 위원장의 건강이 나쁘다는 전제를 깔고 그의 유고(有故)에 대비해 정책을 편다고 말해왔는데 이번에 보니 김 위원장의 건강은 멀쩡하지 않으냐”고 정부를 향해 반문했다. 김정일을 김정은으로 오판해 언론의 오보를 초래한 것보다 더 큰 정보 판단의 실책 이라고 꼬집었다. 우리 외교안보 라인이 뼈아프게 새겨야 할 질책이었다.



 1년간 세 번의 방중 루트는 조금씩 달랐지만 세 차례 연속 방중에는 숨겨진 공통분모도 엿보였다. 집요할 정도로 일관된 방중 목적이 그것이다. 후계체제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전환을 위한 물적 기반을 착실히 준비하는 것이 김 위원장의 최대 관심사다. 물적 기반을 위해 인민들의 불만지수를 낮춰줄 식량 확보 및 경제지원 확보가 절실했다. 김 위원장은 방중 직후 황금평과 나선특구 개발을 구체화함으로써 적잖은 성과를 챙겼다.



 김씨 왕조의 체제 안보를 위한 최신 무기 도입과 군사적 지원도 물적 기반에 포함된다. 그래서 방중 기간에 김 위원장은 ‘북·중 우호합작상호원조조약’ 체결 50주년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몇 차례 강조했다.



 수천㎞를 달려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전 국가주석을 만나러 그의 고향 양저우(揚州)로 달려가는 모양새를 취한 것도 따지고 보면 김 위원장으로선 방중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계산된 연기일 공산이 크다. 김일성과 장쩌민의 1991년 10월 양저우 회동 20주년을 모티브 삼아 양국의 끈끈한 우호관계는 대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을 비롯한 현 중국 지도부에 던졌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광인 김 위원장의 방중 기획 능력은 아직 녹슬지 않아 보였다.



 중국인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 행보를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빗대고 있다. 해 질 무렵 빛이 반사돼 하늘이 잠시 밝게 빛나듯, 김 위원장이 막판에 잠시 정신이 맑아진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가 지는 해를 얼마나 오랫동안 붙들어둘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잦은 중국 마실 가기가 한국 정부에 당혹스러움과 새로운 숙제를 안겨줬다는 사실이다. 허를 찌른 김 위원장 때문에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은 지금 기로에 섰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