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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의 별 ‘무명의 헌신’ 상징 … 국정원, 사이버안보·테러·산업스파이 새 과제

중앙일보 2011.06.07 03:01 종합 12면 지면보기



[국정원 50년] 지금 내곡동에서는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내부 검은 대리석에 48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이들 별은 정보 활동 과정에서 순직한 요원을 가리킨다. [국정원 홈페이지]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내부에는 48개의 별이 새겨진 검은 대리석이 있다. 1961년 창설 이후 대북·해외 정보활동 과정에서 희생된 요원들의 숫자에 맞춘 추모 상징물이다. 96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 근무 중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피살당한 최덕근 영사도 그 별 중 하나다. 하지만 대리석 어디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추모석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이란 국정원의 원훈(院訓)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정원이 10일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중앙정보부로 출범해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며 영욕의 세월을 겪은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반세기를 지났다. 하지만 국정원 안팎이나 직원들한테서 50돌의 분위기를 찾기는 힘들다. 한 간부는 “드러내지 않고 일하는 게 숙명인 정보기관이 어떻게 떠들썩한 생일상을 받겠느냐”고 말했다. 원세훈 원장도 간단한 내부 기념식 정도만 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는 뜻을 비쳤다고 한다.



 50돌을 맞은 국정원의 화두는 ‘변화하는 정보기관’이다. 권위주의 시절 국민에게 공포와 억압의 권력기관에서 국가안보와 보안의 첨병으로 바뀌고 있다. 민주주의의 정착, 글로벌 경제전쟁, 테러, 정보혁명, 급박하게 돌아가는 북한 정세는 국정원의 좌표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있다. 국정원은 요즘 국민 속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국정원 청사를 영화·드라마의 촬영장으로 개방한 것은 대표적이다. ‘그게 정보기관이 할 일이냐’는 일부 직원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젠 대형 카메라와 감독의 ‘액션!’ 소리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한 관계자는 “TV 드라마 ‘에어시티’의 이정재나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주연을 맞은 이준기가 그려낸 정보기관 요원의 모습이 국민에게 국정원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드라마 ‘아이리스’와 영화 ‘7급공무원’ ‘태풍’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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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기관 업무에 대한 선호도 증가와 이미지 변신 덕분에 매년 8월 치러지는 7급 공채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학생이 선호하는 공기업 10위 안에 꼽혀 ‘국정원 고시’란 말도 생겼다. 각 기관·기업체에 제공되는 해외경제 관련 정보는 호평을 받고 있다. 해외정보 파트 관계자는 “각국에서 활동하는 정보요원(IO)들이 보내온 생생한 경제·투자정보에 대한 기업인들의 관심이 높다”며 “우리 원의 약칭인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에 왜 ‘서비스’가 들어 있는지 잘 알게 됐다는 반응”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지난 2년 새 정보 실패와 돌발 악재가 유난히 많이 불거졌다. 지난달 20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는 국정원의 잘못된 첩보로 외교안보부처 장관들까지 한때 ‘김정은 단독 방중’으로 보고받고 일부 언론이 대형 오보를 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한 국회 정보위원은 “김정일 방중뿐 아니라 그가 장쩌민(江澤民·강택민) 전 국가주석을 만났는지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또 “농협 전산망 해킹 사고 직후 국정원은 북한 소행이 아닌 내부사고라고 했는데 검찰 수사 결과 7개월 전부터 북한이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지난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태도 8월께 (도발을 암시하는) 감청 정보를 입수했는데 전혀 준비를 못하다 한 방 얻어 맞은 것”이라며 대북 정보에서의 안이한 태도를 비판했다. 한 국정원 직원은 “우리 원 소속 영사가 연루된 상하이 스캔들과 리비아에서의 요원 추방사건, 인도네시아 대표단 숙소 침입사건 등 잇단 추문으로 직원들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탈정치·권력화와 제도화는 여전히 과제다. 국정원의 난맥상은 역대 정권들이 국가 정보기관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주무르고 일부 간부가 거기에 장단을 맞춘 후유증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권이익·안보가 아닌 국가이익·안보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문들이다.



이영종·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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