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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 내달 6일 IOC 결정 앞두고 막판 스퍼트

중앙일보 2011.06.07 02:00 종합 8면 지면보기



“평창 레이스에 은메달은 없다”



조양호 위원장은 “올림픽 유치전은 마라톤과 같다”며 “마지막 남은 한 달 동안 방심하지 않고 신발끈을 더욱 조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변선구 기자]



“1970년일 거예요. 스키를 짊어지고 평창 어딘가엘 갔어요. 아무것도 없고 오두막 하나에다 20~30m 되는 언덕이 있었어요. 내려오는 데 10초도 안 걸렸어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도 내려오는 데 1분이면 그만이었죠. 스키 한 번 타면 하루가 다 가는 거죠.”



 조양호(62)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과 평창의 인연은 4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인연의 끈은 질기고 길다. 조 위원장은 지금 평창에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오두막과 눈 쌓인 언덕뿐이던 평창엔 이제 세계 굴지의 겨울스포츠 시설이 들어섰다. 그곳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린다면 조 위원장에게도 영원한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는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에서 열리는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결정된다. 마무리 유치 활동에 분주한 조 위원장을 지난달 30일 서소문 KAL빌딩 18층 회장실에서 만났다. AP를 비롯한 주요 외신이 평창을 ‘선두주자’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조 위원장은 “이 레이스엔 은메달이 없고 오직 금메달 하나뿐이다” “한 발만 헛디뎌도 모든 게 어긋날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자세를 거두지 않았다.



 -이제 한 달 남았습니다. 유치활동을 어떻게 마무리하실 겁니까.



 “평창이 두 차례 유치활동을 하면서 길을 닦아 놓은 것도 있고, 대한항공의 회장이라고 하면 회사 인지도가 있으니 대화가 수월해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한 달 남은 상황에선 더 신발끈을 조여야지요. 유치전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이 레이스엔 은메달이 없고 오직 금메달 하나뿐이지요. 지금까지 열심히 잘 뛰어왔다고 우쭐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고 가야 합니다.”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유치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애매해 제한사항이 많습니다. 정식으로 IOC 위원을 방문할 수도 없습니다. IOC 위원을 초청하지도 못하고 단독으론 공식적으로 만나는 것도 안 되고. 위원들이 모이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서 모두 어울리는 자리에서 설명하는 식이에요. 공식적으로는 6월 말에 아테네에서 스페셜 올림픽이 있으니 거기 참석하고, 그 다음엔 토고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연합회의에 가게 되죠. 토고에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요.”



 -지난 2월 IOC 실사단이 왔을 때 많은 점수를 딴 것 같던데요?



 “실사단을 맞이하면서 저는 ‘승객을 모시는 사무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원도 지역 주민들의 유치 지지도가 90%가 넘고, 실사단이 왔을 때도 아주머니부터 아이들까지 나와 열렬하게 환영하니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환영 나온 아이들이 영어는 못 해도 ‘평창, 평창’ 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올림픽을 진정으로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던 거지요. 외국인들 입맛에 맞춘 한식을 제공하는 등 글로벌한 접근을 시도했고요.”









강원도 전방에서 군 복무를 한 조양호 위원장은 베트남전쟁에도 파병됐다. 사진은 베트남전 당시의 조 위원장. [대한항공 제공]






 -평창의 슬로건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인데요, 외국 분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시나요?



 “한국은 겨울스포츠에서도 존재감이 커졌고, 아시아 지역에서 겨울스포츠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경쟁 도시인 프랑스의 안시와 독일의 뮌헨에 알프스 산맥이 있지만, 우리 태백산맥도 경기 규격에 부합하고 무엇보다 평창엔 다른 도시들에 없는 주민의 열망이 있어요. ‘세 번째 도전’이라며 동정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 평창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서 아시아 겨울스포츠의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하고 있습니다.”



 -유치 가능성이 보이면서 ‘숟가락 놓는’ 사람은 없습니까?



 “중앙정부가 중심이 되어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리를 잘 해주고 계십니다. 나도 60을 넘긴 지금 명예나 돈을 목표로 하거나 정치에 나가기 위해 유치활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소신껏 목표를 달성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지금 90%까지 ‘올인’하고 있고, 경륜이 많은 대한체육회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등 다른 분들도 그렇습니다. 저는 유치위원장으로서 화합을 이끄는 지휘자라고 생각합니다.”



 -IOC 행사 때마다 프레젠테이션이 아주 훌륭하다는 평을 듣는데, 비결이 있습니까?



 “제가 무대공포증이 있더라고요. 위원장이 되고 프레젠테이션을 두세 번 했는데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어요. 수소문을 해서 영국의 연설 전문가를 소개받았죠. 한국인들은 나를 어려워할 수 있겠지만 외국인들은 그런 것 없을 테니까 일부러 외국인을 골랐습니다. 발음 교정부터 시작해 감정을 집어넣고 억양을 조절해 말하는 법을 배웠지요. 영국에 직접 찾아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도 했어요. 누워서 연습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발성도 가다듬었죠.”



 -영화 ‘킹스 스피치’의 한 장면 같군요.



 “그 영화를 재미있게 봤어요. 많은 걸 느꼈지요. 계속 연습을 하니 조금씩 여유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계속 연습합니다.”



 -평창이나 겨울스포츠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십니까.



 “겨울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스키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평창에 오대산 월정사가 있잖아요. 월정사의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된 걸 재건할 때 선친(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께서 시주를 하셨거든요. 이번에 월정사 스님들이 열심으로 백일기도도 해주시고 그래요. 저도 평창과 ‘뭔가 인연이 있다’고 느낍니다. 물론 군 복무 시절에 강원도 전방에서 고생을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웃음).”



 조 위원장은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 7사단 수색대대에 근무하다 베트남에 파견됐고, 돌아와서는 다시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지켰다. 지난해 10월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열린 IOC 행사에서 만난 미국인 기자 앨런 에이브러햄슨은 조 위원장이 햄버거로 끼니를 때워가며 39일 동안 대륙을 횡단한 일화를 전해 듣고 인터넷 미디어(3wire)를 통해 크게 보도했다.



 -미국 유학 시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969년의 일입니다. 저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무척 강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한국을 모른다는 걸 알고 많은 생각을 했지요. 그때의 경험 때문에 지금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서 하는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지원하게 됐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가서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제공되면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루브르·에르미타주·대영박물관에서 실시되는 한국어 서비스는 조 위원장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인 쾌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한항공은 박물관을 찾은 한국인들이 모국어로 안내받을 수 있도록 멀티미디어 가이드 서비스를 후원했다.



 -기업인으로서의 삶과 유치위원장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릅니까?



 “지금까지는 ‘갑’의 입장이었는데, 여기(스포츠계)에선 내가 ‘을’이잖아요. 다들 ‘재벌 2세가 대접만 받았지 서비스할 줄 알겠느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밴쿠버 겨울올림픽 리셉션에서도 손이 빈 사람이 있으면 제가 직접 맥주를 들고 가서 말을 걸었어요. 놀라는 사람들에게 ‘대한항공은 원래 서비스 중심 회사’라고 했죠.”



 -마지막으로 당부 말씀이 있다면.



 “벌써 ‘다 된 것처럼’ 하는 분들이 있어서 우려가 됩니다. 이 (유치경쟁) 마라톤에선 마지막 1㎞에서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야 합니다. 경쟁국 프랑스·독일도 잘하고 있습니다. 한 발만 헛디뎌도 모든 게 어긋날 수 있습니다.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허진석·전수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2003년부터 그룹을 이끌어왔다. 비행기 조종부터 정비에 이르기까지 항공 부문에 정통한 CEO다. 인하대 공대,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조 회장은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2010년 국제기구 ‘피스 앤드 스포츠’ 대사로 임명됐다. 부친에게 중학교 입학 선물로 리코 카메라를 선물받은 뒤 사진에 입문해 지금은 작가 수준의 실력을 연마해 매년 그룹 홍보용 달력에 자신의 작품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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