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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곡선미와 어울리는 서촌 한옥 감동적”

중앙일보 2011.06.07 00:44 종합 31면 지면보기



한옥 사는 파우저 서울대 교수 ‘서촌 지키는 모임’ 결성



인왕선 능선에서 내려다본 서촌.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도훈 기자]





“서울 누하동 필운대길은 서촌 한옥마을의 기와 너머로 인왕산이 훤히 내다보이던 운치 있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몇년 새 고층건물이 올라가면서 경관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5일 오후 7시 서울 누하동의 한 한옥 안채에서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창립 모임이 있었다. 서촌의 한옥을 보전하고 난개발을 막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이다. 서촌에 사는 CF촬영감독·건축가·주부 등 10여 명이 회원이다.



이날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된 이는 로버트 파우저(50)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그는 유창한 한국어로 “서촌의 경관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우저 교수는 연구회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3월엔 서울 계동 북촌에 79㎡(24평)짜리 한옥을 사서 살고 있다.









파우저 교수는 “서촌은 산 능선과 만나 멋진 분위기를 만드는데 한국인들이 잘 모른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도훈 기자]



미국 미시건대 출신인 그는 고려대 조교수, 일본 교토대 부교수를 거쳐 2008년부터 서울대 부교수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외국인자문위원, 한글브랜드화 사업추진위원회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 어떻게 모임을 만들게 됐나.



 “2009년 서촌 필운대길에 살았다. 인왕산의 풍광을 바라보며 산책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 길가에 7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스카이 라인’이 망가졌다. 구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건축법상 문제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지금도 서촌 곳곳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한국인들은 전통가치의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 점이 답답해 나섰다. 외국인이 나서면 좀 더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 한옥 보전 주장에는 재산권 침해 논란이 늘 따라다닌다.



 “사유재산은 맞지만 공공의 목적도 중요하다. 사유재산 개념이 확실한 미국도 수도 워싱턴은 엄격한 건축규정에 따라 건물을 짓는다. 워싱턴의 도시계획은 국가수도계획위원회가 담당한다. 국가 차원이다. 프랑스 파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국은 구청, 시청이 맡는다.”



 -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릴 적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 교토의 전통가옥에서 살아 동양의 집이 낯설지 않다. 1988년에는 서울 혜화동의 한옥에서 1년쯤 세들어 살았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이 보이는 한옥 살이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 한옥 살이의 좋은 점은.



 “한옥 자체도 아름답지만, 무엇보다 한옥이 산 아래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감동적이다. 서울은 다른 나라의 수도와 달리 산 능선이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그 아래 한옥과 만나 분위기가 극대화되는 곳이다. 특히 서촌 한옥마을이 그렇다. 한국사람이 오히려 이를 모르니 안타깝다.”



 - 앞으로 계획은.



 “지난해 서울시에서 서촌 한옥마을의 보존 계획(경복궁 서측 제1종지구단위 계획안)을 발표했다. 일부 구역에서 신축 건물은 한옥만 지을 수 있고, 한옥을 허문 자리에는 반드시 한옥을 지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그 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건물은 이 계획에서 예외다.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해 바꾸도록 힘쓸 계획이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김도훈 기자





◆서촌 한옥마을=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의 한옥 밀집지역이다. 효자·창성·통인·누하 등 15개 동이 포함돼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한옥의 전통이 잘 간직된 북촌과 달리 1910년대 이후 지어진 개량 한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윤동주·이상·노천명·이중섭 등 예술가들이 살던 집이 있고 독특한 형태의 한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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