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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시로 치료하다

중앙일보 2011.06.07 00:39 종합 33면 지면보기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




고등학교 2학년의 한 남학생이 말했다. “어려서부터 양쪽 눈이 나빠 잘 놀지도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냈어요. 시를 쓰면서 연민이나 포용하는 감정이 생겼어요. 표현하는 힘, 상상력에 젖다 보니 성격에서 짜증나는 것도 많이 삭혀졌어요.” 그 학생이 쓴 시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그대가 검은 눈으로 햇빛을 재봉질 한다’.



여기서 검은 눈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의 눈이라 했다. 거기엔 또 시력이 나빴던 자기의 눈도 투사됐던 셈이며, 그간의 자신의 어두웠던 마음도 함께 투영되었으리라.



 다른 학생의 경우다. 중학교 때부터 소설을 좋아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나 주인공과 자신을 많이 동일시했다. 그럼 작품이 꼭 내가 쓴 기분 같았다. 자신에 대한 소설도 수필 형식으로 써봤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객관화되는 체험이다. 머릿속에 고여 있던 게 많이 배출되는 것 같았다. 요즘은 시를 쓰는데, 말을 압축 표현하려다 보니 사물을 세밀히 관찰하는 습성이 생겼단다. 이 학생의 시 한 구절이다. ‘정류장에는 텅 빈 그녀의 껍질만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혹은 실존적 불안에 대해 그리 표현했던 거다. 기특하지 않은가.



 덩달아 옆의 한 여학생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면이 많았는데 그래서 너무 갇혀 지냈어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이젠 주변 얘기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아요. 애정을 갖고 잘 살펴보는 마음도 생겼어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콤플렉스가 완화됐다는 소리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다른 남학생 왈, 시를 쓰면서 눈이 더 넓게 열렸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집중력도 좋아진 것 같아요. 이어 또 다른 학생이 그랬다. “전엔 표현을 잘 못하고 연애하고 노는 것밖에 몰랐는데, 그런 객기를 다 버렸고 어머니한테 입은 상처도 많이 극복하게 됐고요.” 스스로 찾은 밝은 의지가 대견스러웠다.



 우연찮게 만난 내 경험이었다. 지도교사인 안명옥 시인은 시가 마음의 치유적 기능이 있다고 확신했다. 사회적응을 잘 못했던 학생들이 일 년 새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게 그 징표란다. 최근 10년 새 여러 학회에서 시 치료 연구가 활발해졌다. 문학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해 점차 그 관심이 늘고 있는 모양이다. 시는 특히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에게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좋은 친구다. 문학 치료 일반의 특징이 그렇듯 남 의식 않고 스스로를 조용히 살펴보게 하는 안전한 방법이다.



 간디학교의 한 여학생은 엄마와의 관계갈등을 겪었으나 인도 여행을 다녀온 뒤 이런 시를 썼다. ‘눈앞에 당장 쏟아질 것만 같은 수많은 별들/ 내 가슴속 두근거림과 설렘의 소리/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내 안의 폭풍 같은 감정들/ 신기하구나. 오늘도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로써 내 영혼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 그후 엄마와의 관계도 훨씬 더 푹신해졌단다. 사랑스러운 청소년들이여. 모든 아픔을 잘 관찰하면서 시를 통해 의미를 찾으며 이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 인생은 자신이 만드는 한 편의 드라마이기도 하니까.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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