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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간 나오토를 단명 총리로 만든 것

중앙일보 2011.06.07 00:32 종합 34면 지면보기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7일로 재임 365일째가 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 그에겐 시간이 없어 보인다. 며칠 전 그는 조기 사임을 약속하고서야 국회 불신임을 모면했다. 그 뒤 여·야당은 왜 빨리 그만두지 않느냐고 아우성이다. 일본 신문들은 연일 ‘포스트 간’ 체제로 지면을 메우고 있다. 또 한 명의 단명(短命) 총리가 나온 것이다. 5년5개월간 재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이후 총리 교체는 연중행사가 돼 버렸다.



 끌어내리려는 쪽의 주장은 간단하다. 위기관리, 국정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 그 근거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의문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이 총리였다면 더 잘했을까, 자민당 정권이었다면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했을까, 총리를 바꾸면 뭔가 더 나아질까….



 일본 정치 돌아가는 걸 보면 어느 질문에도 ‘그렇다’는 답을 기대하긴 어렵다. 누가 해도 도토리 키재기 아니겠나 싶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흔히 묻는다. 왜 일본에선 강력한 리더가 나오지 않느냐고.



 이에 대해 그럴듯한 해석이 ‘중공(中空)구조론’이다. 일본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전 문화청 장관인 가와이 하야오(河合<96BC>雄, 1928~2007)의 논리다. 그는 일본의 리더십 부재를 문화적 요인으로 파악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신화엔 만능의 절대신이 없다. 천계(天界)를 지배하는 신도, 황천(黃泉)에 군림하는 신도 절대적 능력을 지니진 못한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같은 중심적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여러 신들이 서로 적당한 균형을 취하며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으로 돼 있다. 이것이 일본의 정치는 물론, 기업 지배구조의 근저를 이룬다는 게 가와이의 설명이다. 권력의 중심을 빈 채로 두는 대신, 이를 둘러싼 지도자들의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중공구조를 정치제도에 고스란히 반영한 게 1889년 메이지 헌법이다. 당시 총리는 다른 각료와 동급이었다. 각료 파면권도 없었다. 각의 결정은 전원일치제였으니, 총리는 의견 통일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지배구조라고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50년 넘게 굴러갔다. 일왕의 존재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물론 지금의 신헌법은 다르다. 제도상으론 중공구조가 사라졌다. 총리는 내각의 대표자로 각료 임명권과 파면권, 중의원 해산권을 지닌다. 대통령적 총리다. 하지만 현실 정치엔 여전히 중공구조가 남아 있다. 여러 파벌로 분산된 권력이 중심권력의 형성을 막은 것이다. 총리가 돼도 주요 사안은 당내 유력 파벌들의 합의로 결정하곤 한다. 무슨 일이든 막후조정이나 사전협의(네마와시)를 거쳐야 돌아가는 게 일본의 현실이다. 일본 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를 ‘비공식적 조정 메커니즘’이라 표현했다. 지지율과는 관계가 없다. 80%가 넘는 지지율을 업고 집권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도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다.



 가와이는 중공 상태를 ‘무(無)이면서 동시에 유(有)’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나 에너지가 속에 꽉 차 있는 듯한 형태라는 뜻이다. 이게 충만할 때는 정치사회적인 구심력이 작동하지만, 빠져나가면 사회 전체가 흐물흐물해진다고 한다. 고도성장기는 전자, 지금은 후자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권력의 한가운데서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떠안으려는 강력한 리더를 찾기 어렵다. 이는 단명 총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총리를 만들어낸 일본 정치문화의 본질적 한계다.



 일본의 지식인들도 이를 잘 안다. 그러나 바꿀 방법이 마땅찮다. 의식혁명 없이는 될 일이 아니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운영체제(OS)를 통째로 바꿔 끼우는 거나 같다. 이거 없이는 누가 총리가 되든 마찬가지일 듯하다. 하기야 일본 우익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보다는 차라리 중공구조가 나을지 모른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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