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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31) 스포츠머리의 원조

중앙일보 2011.06.06 02:02 종합 22면 지면보기



‘가정교사’는 신성일표 짧은 머리 유행 낳았다



1963년 상영된 ‘가정교사’. 신성일(왼쪽)이 처음으로 스포츠머리를 선보였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젊음은 거칠 게 없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 힘을 바탕으로 찍은 영화가 ‘가정교사’(1963)다.



‘아낌없이 주련다’에 출연하면서 극동흥업에 자주 드나드는 관계가 됐다. ‘아낌없이 주련다’ 이후 또 한 번 성공을 노린 극동흥업은 일본 작가 고미가와 준페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정교사’의 판권을 정식으로 샀다. 지금도 일본 최고 배우로 추앙 받는 이시하라 유지로와 요시나가 사유리가 남녀 주연하며 대성공한 작품이었다. 주인집 이복형제가 가정교사인 여주인공을 서로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다. 시나리오 작가 서윤성이 한국식으로 각색을 했는데 대본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나는 원작소설을 구해 읽기까지 했다.



 어느 날 극동흥업에 갔더니, 차태진 사장이 ‘가정교사’ 스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 사장과 김기덕 감독은 남자 주인공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 나는 명동 뒷골목에서 구한 일본 영화잡지 ‘스크린’을 읽고 유지로의 스포츠머리를 알고 있었다. 반항적 이미지의 청춘스타로 떠오른 유지로는 소설가로 명성을 떨친 이시하라 신타로 현 도쿄 도지사의 친동생이었다.









서윤성 작가(左), 김기덕 감독(右)



 이시하라 형제는 전후(戰後) 일본 문화계를 휩쓸었다. 형 신타로는 55년 발표한 소설 『태양의 계절』에서 태평양전쟁 패배 후 몰락하는 황족의 후예와 기성 질서에 반항하는 젊은이를 그렸다. ‘태양족(太陽族)’이라는 용어도 유행시켰다. 동생 유지로는 일본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체격이 훤칠했다. 액션에 능하고, 노래도 매력적인 청춘영화의 대명사였다. 그가 62년 부른 ‘빨간 손수건(赤いハンカチ)’은 NHK가 발표한 ‘20세기 일본의 노래 100곡’ 안에 들어 있다.



 차 사장이 들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앗싸리(일본어로 산뜻하다는 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유지로의 스포츠머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가정교사’는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내게 꼭 맞는 영화였다. 나는 차 사장에게 당돌하게 말했다.



 “나 머리 깎습니다.”



 차 사장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길로 충무로 라이온스 호텔 1층 이발소로 가 스포츠머리로 깎았다. ‘아낌없이 주련다’ 때는 긴 머리였으니 180도 이미지 변신이었다. 차 사장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배역은 그 다음 날 차 사장과 김 감독이 내 머리를 보고 싱긋 웃은 걸로 결정됐다.



 예상대로 영화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반항적인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굳혔다.



그 전까지 어떤 영화배우도 스포츠머리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 영화로 스포츠머리가 유행하게 됐다. 시골 이발소에선 “신성일 머리로 깎아달라”는 주문이 크게 늘어났다.



내 스포츠머리는 요즘의 퍼머 이상으로 돈이 많이 들었다. 군인머리처럼 휙 밀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나흘에 한 번씩 다듬어야 했다. 64년 최고 히트작인 ‘맨발의 청춘’을 비롯해 상당수 청춘물을 이 머리로 소화해냈다. 난 대한민국 스포츠머리의 원조인 셈이다.



 ‘한국의 이시하라 유지로’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한국의 신성일, 일본의 이시하라 유지로, 미국의 폴 뉴먼이 같은 계열의 배우라 할 수 있다. 난 서서히 ‘맨발의 청춘’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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