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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정진석 수석과 삼화저축은행

중앙일보 2011.06.06 00:13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역대로 청와대는 전쟁 수행 사령부였다. 나라 밖으로는 북한, 안으로는 정권도전 세력과 전쟁을 치렀다. 총성은 없지만 지면 정권이 죽는 살벌한 전쟁이었다. 많은 경우 전략보다 도덕성이 승패를 결정했다. 철책에 비(非)도덕의 구멍이 뚫리면 정권은 무너졌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반(反)독재 시위대를 놓고 “탱크로 깔아뭉개자”고 했을 때 박정희 정권은 몰락으로 내달렸다. 청와대 핵심이 ‘깃털·몸통’ 비리 논란에 휩쓸리자 김영삼 정권은 주저앉았다.



 ‘차지철 사태’ 전까지만 해도, 박정희는 전쟁 사령부의 엄정함을 잘 알고 있었다. 1970년 봄 사정(司正)을 단행하면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병역 기피자를 솎아내라고 지시했다. 직원 1명이 문제였는데 그는 학도병이었다며 정황을 댔다. 대개 학도병은 기록이 없고 특별히 그의 주장을 뒤집을 증거도 없어 김정렴 비서실장은 이를 덮어두었다. 그러나 며칠 후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지적이 대통령 귀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대로(大努)했고 직원은 다른 부서로 전출됐다. 김 실장은 “비서실장 9년3개월 동안 큰 꾸지람을 두 번 들었는데 이 사건이 그중 하나”라고 회고한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 뇌의 10분의 1쯤을 차지하는 핵심 참모다. 그런 참모가 지금 저축은행 파동에 휩싸여 있다. 정진석 수석은 2008년 4월까지 3년여 동안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지냈다. 이 은행은 지난 1월 영업이 정지됐다. 정 수석은 해명 자료에서 “당시에는 저축은행이 사회의 지탄을 받거나 골칫거리로 지목되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맞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의식이다. 그는 “은행의 경영회의에 참석하거나 로비 활동을 한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 회사의 자문에 개인적으로 응하는 형식으로 사외이사 직무를 수행했으며 3년간 매월 활동비 또는 교통비 명목으로 200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5년 국회의원이 된 후 사외이사 겸직을 신고하지 않은 데 대해 “당시 국회 사무처는 ‘극히 일부 교통비만 지급돼 신고할 필요 없다’고 했다”며 “겸직신고는 강제가 아닌 자율 조항이라고 알려왔다”고 해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1년에 한두 차례 자문에 응하기만 하고 2400만원을 받았다. 3년으로 치면 3~6번의 자문으로 7200만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매달 200만원을 ‘극히 일부 교통비’라고 표현했다.



 그는 사외이사에 대해 “지난 2004년 낙선 후 실직 상태에 있을 때 초등학교 후배의 권유로 됐다”고 설명했다. 실업 대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듬해 국회의원이 되고도 겸직했다. 그리고 그의 신고재산은 2010년 현재 40억이 넘는다. 18억원짜리 강남 50평대 아파트와 부부의 예금 16억원이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급이라는 신라호텔 헬스클럽 회원권까지 있다.



 청와대 수석의 해명 자료는 국민에 대한 정권의 보고서다. 그런데 친(親)서민을 외치는 정권의 대(對)국민보고서가 서민의 가슴을 쑤셔놓았다. 국회 청문회가 열리면 대통령의 측근 참모는 국민 앞에 설 것이다. 그는 3~6차례 자문으로 7200만원을 받는 능력이 무엇인지, 1개월 200만원이 어떻게 ‘극히 일부 교통비’인지, 40억 재산가 국회의원이 왜 오랫동안 200만원짜리 사외이사를 겸직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지금 야당은 마음 놓고 포를 쏘고 있다. 근거가 없어도 대놓고 포를 쏴대고 있다. 공정과 친서민이라는 이명박 정권의 미사일 방어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아는 것이다. 정 수석이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됐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살벌한 전쟁을 치르기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합법만큼 도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청와대는 정권의 ‘도덕 사령부’ 아닌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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