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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

중앙일보 2011.06.06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대학을 나온 뒤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며 살아가는 지미는 중산층 집안 출신의 아내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정치와 종교를 조롱하며 기성 사회체제를 비난하는 것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거칠게 토해낸다. 1956년 영국에서 초연된 존 오즈번의 연극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에 그려진 주인공의 모습이다.



 전후(戰後) 새 시대의 희망찬 행렬에서 소외된 젊은이들, 사회적 상실감의 공백을 암울한 분노로 채워가던 노동계층에 크게 어필한 이 연극은 적극적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프리 시네마(free cinema)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en)’로 대변되는 청년 저항문화의 모태가 되었다.



 프랑스의 ‘무서운 아이들(enfant terrible)’은 더욱 급진적이었다. 1968년 5월, 독일계의 다니엘 콘-벤디트를 선두로 한 ‘앙팡 테리블’들은 샤를 드골 대통령의 보수우익 정권을 낡은 이념의 수구(守舊) 세력으로 단정하고 격렬한 반체제 투쟁을 벌인 끝에 마침내 드골의 하야(下野)를 이끌어내며 유럽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우리 현대사에도 성난 젊은이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국부(國父)로 추앙받던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항거해 궐기한 4·19 학생혁명, 신군부의 군사 독재를 꺾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해낸 6월 항쟁은 성난 젊은이들의 정의로운 분노와 굽힐 줄 모르는 저항정신이 그 원동력이었다.



 청년 학생들의 희생적 투쟁에 힘입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민주화 세력은 스스로 정권을 맡게 된 뒤에도 분노의 응어리를 다 풀어내지 못한 채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온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애써 부정하고, 자학(自虐)의 붓에 증오의 먹물을 찍어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로 조국의 현대사를 서글피 써 내려갔다.



 중국에 명줄을 댄 채 근근이 연명하면서 세자 책봉의 주청(奏請)까지 올리는 북한의 사대적(事大的) 행보에는 한사코 눈을 감는 반면에 대한민국은 친미·사대의 나라로 깎아내리는 굴절된 역사의식, 소리 높이 외치던 ‘자유·민주·인권’의 가치를 폐쇄적 민족주의의 늪에 던져버린 정체성 상실, 경제 발전의 혜택을 흠뻑 누리면서도 그 성취를 위해 피땀을 흘린 지난 세대를 폄하하기에 바쁜 외눈박이 눈길… 그 기막힌 자기모순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도덕적 자만심은 거의 신성불가침이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선(善)의 역사’나 ‘악(惡)의 역사’만을 가질 수는 없다. 역사의 주체인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지니면서 때로는 순수하고 때로는 천박하기도 한 모순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대사도 때로는 밝고 때로는 어두운 모순과 갈등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선의 역사’나 ‘악의 역사’ 중 어느 하나로 명쾌하게 규정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선인(善人)인지 악인(惡人)인지’를 명쾌하게 규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추상적이고 초(超)역사적인 기준으로 역사의 도덕적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에드워드 카의 말이다. 교조적(敎條的) 이념의 잣대로 역사를 재단(裁斷)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68년의 프랑스 좌파학생운동을 이끈 콘-벤디트는 뒷날 이렇게 술회했다. “68을 잊어라. 68로 돌아갈 수 없다.” 변절의 선언이 아니다.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시대정신도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는 보수나 진보의 독무대가 아니다. 우파의 부패와 타락이 좌파의 구호를 정당화하고, 좌파의 독선과 도그마가 우파의 가치를 입증해주는 법이다. 서민들에게 피눈물의 희생을 떠안긴 어느 권력 측근의 물방울 다이아가 앞의 예라면 어린 학생들에게 계급투쟁의 민중사관(民衆史觀)을 주입시키는 의식화 교육은 뒤의 예일 것이다.



 영국 청년 존 오즈번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외침은 40년 후 같은 영국 젊은이들에 의해 뒤집힌다. 95년 록그룹 오아시스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말라(Don’t Look Back In Anger)’는 히트곡을 냈다. ‘성난 얼굴’들의 사막 속에서 ‘따뜻한 눈길’의 오아시스를 노래한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지켜온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현충일 아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즈번의 ‘성난 얼굴’이 아니라 오아시스의 ‘따뜻한 눈길’ 아닐까?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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