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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안중근의 거사 그림을 이탈리아서 찾아낸 집념

중앙일보 2011.06.04 00:17 종합 21면 지면보기






1952년 12월, 미국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을 찾은 아이젠하워가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수도사단을 찾은 모습을 그린 조덕환의 유화. 현직 대통령도 아닌 아이젠하워는 책상 앞에 앉아있고 이승만 대통령은 책상도 없이 밀려나있다. 이 대통령 뒤로 당시 백선엽 참모총장과 송요찬 수도사단장(왼쪽부터)이 보인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이충렬 지음, 김영사

296쪽, 1만6000원




그림은 사람살이를 담고 있는 풍부한 곳간이다. 한 순간의 정확한 사실과 자료를 인증하는 사진과 비교해 그림은 함축하는 질감이 두텁다. 보는 이가 어떤 관점을 지녔는지에 따라 수많은 그림읽기가 가능해진다. 눈이 좋은 사람에게 그림은 때로 책 몇 권 분량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술가 이충렬(57)씨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그림을 읽기 시작했다. 20대 초에 이민 간 미국의 국경 도시에서 잡화를 팔며 고독한 시간을 메우려 그림을 모으고 꼼꼼히 뜯어봤다.



해외에 떠도는 한국 근대 관련 그림에 집중하니 자연스레 각종 문헌과 자료도 따라왔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은 그림에게 말을 걸며 수많은 밤을 씨름한 이씨가 엮어낸 그림 역사서다.



 출발은 소박했다. 이씨는 “근대는 가장 가까운 과거인데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근대는 우리 민족이 잊고 싶은 상실의 시대인가, 하지만 근대가 없이 어떻게 우리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는 그림을 붙잡고 역사의 흔적과 사람 이야기를 좇았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 초면인 모르는 얼굴을 앞에 놓고 그는 미궁을 헤매는 심정으로 자취를 더듬어나갔다.



 그 한 예가 스코틀랜드 여성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가 그린 ‘민씨가의 규수’의 정체를 알아낸 대목이다. 대한제국 시절 초대 공사의 딸이라는 작가노트 한 줄로 시작해 그가 고종의 밀사였던 민영찬의 딸 민용아임을 밝혀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장면을 그린 거의 유일한 그림을 이탈리아의 군사주간지 ‘라 트리부나 일루스트라타’ 1909년 11월 7일자 1면에서 발굴한 것도 탐정 뺨치는 그의 능력 덕이다.



러시아 동포 3세 화가 변월룡(1916~90)이 1953~54년 북한에 머물며 기록한 인물화들은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한국전쟁 때 사라진 내금강 마하연의 모습이 살아오고, 소문으로만 남아있는 한강의 황포돛배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이충렬씨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이 그림들은 1898년부터 1958년 사이에 그려진 외국 화가와 우리 화가의 작품 86점으로 그중 많은 수가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이씨는 “근대기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고민하며 어디에서 희망을 찾았는가 궁금했다”며 “그들의 노력 덕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임을 입증해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 『간송 전형필』 두 권의 저서 위에 세 번째 책을 얹는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1916~84) 선생의 평전 집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한국미를 지킨 이들에 대한 그의 일관된 추적이 듬직하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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