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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레이디 가가에게 배우는 성공의 법칙

중앙일보 2011.06.03 00:26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내가 기업의 마케팅 책임자라면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낡은 개론서는 집어던져라. 대신 레이디 가가를 보라.”



 사실 마케팅의 영역만도 아니다. 그녀가 명성을 쌓고, 지키고, 강화해 가는 과정은 한 편의 영웅 드라마다. 반항과 일탈의 10대 시절, 생사를 함께할 동지들과의 만남, 입에서 입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는 찬탄, 이어지는 기행과 기적. 키 155㎝, 그리 예쁘지도 착하지도 않던 소녀는 그렇게 스물다섯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명사’(2011년 포브스 선정)가 됐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그녀는 뉴욕에서 태어났다. 두 딸 중 첫째. 네 살에 악보 없이 피아노를 연주했고 열세 살 때 첫 노래를 작곡했다. 뉴욕음대에 조기 입학했지만 18세 때 중퇴했다. 집을 떠나 그녀가 간 곳은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뉴욕 동남부의 버레스크(풍자와 스트립을 뒤섞은 쇼) 클럽이었다. 반나체로 춤추는 딸을 본 아버지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녀가 원한 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팝’을 하는 것이었다. 클럽에서 그녀는 자기만의 실험적 행위예술에 몰두했다. 세상의 터부에 맞서는 법을 배웠다. 가볍지만 까다로운 대중의 기호를 읽는 법도 깨쳤다. 영웅에게 본질을 드러내는 예명은 필수. ‘스테파니 조앤 앤젤리나 저마노타’ 대신 그녀가 택한 건 ‘레이디 가가’, 그룹 퀸의 히트곡 ‘라디오 가가’에서 따온 이름이다.



 열아홉, 어렵게 계약한 음반사는 석 달 만에 그녀를 방출했다. 그래도 기 죽지 않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푸시캣돌스 같은 스타들의 곡을 쓰며 실력을 키웠다. 뜻과 끼가 맞는 걸물들과 마음을 텄다. 2008년 첫 음반을 내자 친구들은 ‘하우스 오브 가가(Haus of GaGa)’라는 팀을 결성했다. 그녀의 모든 무대 의상과 세트, 음향, 뮤직비디오는 이들이 창안한 것이다. 총감독은 물론 레이디 가가. 그녀는 “앤디 워홀이 이끈 창작집단 ‘팩토리’가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구성원 모두 26세 이하인, 여왕의 열정적 친위대다.



 이런 그녀는 ‘걸어 다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다. 트위터 팔로어 1050만 명, 페이스북 친구 3500만 명. 거저 얻은 게 아니다. 그녀의 뮤직비디오는 TV가 아닌 유튜브에서 첫 공개된다. 새 앨범 소식은 트위터로 알린다. 미국 광고 전문지 애드버타이징에이지의 표현처럼 모든 수단과 기술을 총동원해 팬과 소통한다. 그녀에게 SNS는 ‘관객을 끌어들이는 거대한 무형의 무대’다. 제휴 마케팅에도 천재적이다. 스타벅스부터 아마존까지 그녀의 사업 파트너는 분야와 장르를 초월한다. 기저에 있는 건 파격, 혁신, 경계 허물기. 상식과 통념의 틀에 갇힌 이들에게 서슴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통쾌한 충격이다.



 그녀가 데뷔 후 서구 음반차트를 장악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8개월. 누구라도 그녀만큼의 실력, 우군, 스토리, 소통에의 열정이 있다면 최정상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설령 대통령의 자리라도 말이다. 공교롭게도 다음 대선은 18개월 뒤에 있다.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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