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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대회 1등 美 백인소녀, 그녀에게 한류는 아이돌이 아니라 예절

중앙일보 2011.05.31 10:52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앨리사 도노반(사진 左)양.











말하기 대회와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앨리사 도노반양을 엄마가 자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사진제공=보스톤코리아)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국어 글짓기와 말하기 대회에서 재미교포들을 제치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여고생이 1등을 거머쥐었다. 독학으로 한글을 배웠다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갖췄다.



지난달 30일 미국 뉴잉글랜드 한국학교에서 열린 한글 글짓기·나의 꿈 말하기 대회에서 앨리사 도노반(18·Alyssa Donovan)양이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재미한인학교 뉴잉글랜드지역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 대회는 한글로 글짓기를 하고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연설하는 자리다. 7월1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전미 대회의 뉴잉글랜드주 대표를 뽑는 지역예선이기도 하다.



도노반양은 이 대회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일장 연설을 했다. 자신이 한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모를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그리고 도노반은 챔피언 트로피 2개(글짓기와 연설)를 모두 들어올렸다. 뉴잉글랜드주 대표로 7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미국 전역에서 온 쟁쟁한 각 주의 대표들과 다시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겨룬다.



도노반양은 ‘한민아’란 한글 이름을 따로 갖고 있다. 이날 대회에도 '한민아'란 이름으로 참가했다. 본인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화락할 ‘민’, 예쁠 ‘아’라는 뜻에서 ‘민아’로 지었어요. 어떨 땐 앨리사란 이름보다 민아란 이름이 더 친숙해요.” 한자의 뜻까지 조곤조곤 설명하는 소녀의 말투는 느렸지만 또박또박했다. 인터뷰는 전화와 e메일로 진행됐다.



그녀가 처음 한글을 접하게 된 건 2007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글을 배우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독학을 시작했다.



“한국어를 배우면 그 남학생의 가족들과도 의사소통이 잘 될 것 같아 날마다 읽기와 쓰기를 연습했어요. 알면 알수록 한국어가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열심히 공부해놓고는 수줍어 그에게 고백하지 못했답니다. 대신 한국을 좋아하게 됐지요.”



지금도 매주 일요일마다 한국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한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한국어 단어 중에 한문에서 따온 단어가 많아 기본적인 한문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 한문을 공부하기 전엔 ‘자동’이라는 단어를 외웠지만 지금은 한문을 알아서 ‘자’는 ‘스스로’, ‘동’은 ‘움직이다’는 뜻이란 걸 알게 됐어요. 한국어를 잘 하려면 한문도 배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도노반도 한류에 푹 빠져있다. 하지만 여느 10대 소녀처럼 아이돌 그룹이나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또다른 한국의 매력에 빠져있다. 윗사람에게 공손하고 아래 사람은 따뜻하게 보듬는 예절 바른 한국의 모습이다. “미국인으로서 한국인을 바라보면 한국사람들은 참 공손하고 착해 보여요.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유교 사상이 특히 매력적이에요. 미국에는 예의 없는 사람이 많은 것 같거든요. 미국에서도 유교 사상이 많이 전파됐으면 좋겠습니다.”



도노반양은 지난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할 만한 것들은 다 해봤어요. 그래서 다시 가게 된다면 조금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늦은 밤 서울의 한적한 골목길이나 한강 길을 새벽이 될 때까지 걷고 싶어요. 부드러운 달빛만이 저와 함께 한다 해도 아늑하면서 참 좋을 것 같아요.” 시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또래 청소년들보다 정적이면서도 차분함이 엿보인다.



한국 가수 중엔 SG워너비나 넬, 박효신, 러브홀릭 등을 좋아한다고 한다. 주로 발라드 노래를 하는 가수들이다. 그러나 도노반양은 한국의 대중 문화 때문이 아니라 한글과 한국인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 즉 한국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었다. 방에는 태극기가 3개나 걸려있다.



“왜 한국이 좋은지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모두 다 마음에 들어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의 매력은 문화와 역사입니다. 한국의 전통 건축물이나 세종대왕이 민족을 위해 한글을 만드신 것 등은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흥미롭게 다가와요.”



그녀의 부모님은 처음엔 딸의 갑작스런 한국 사랑에 당황했다. 그러나 지금은 옆에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 공군에 입대한 지금의 남자친구도 든든한 후원자다. 고교(디어링고교)를 졸업하면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한국의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2013년 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이후 한국으로 건너가 언어학을 전공하고 싶어요. 어느 곳이든 합격만 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도노반양은 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분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선 아직도 한국이란 나라가 낯설어요. 제가 앞장서서 한국의 진짜 매력을 알릴 거에요.”



김진희 기자



※취재에 도움을 주신 보스톤코리아와 장명술 편집장께 감사드립니다.



▶앨리사 도노반의 '나의꿈 말하기 대회' 영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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