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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깊은 상처와 작은 힘

중앙일보 2011.05.31 03:30 11면 지면보기



박광순 천안시사회복지협의회장









얼마 전 주민생활지원과에서 전화가 왔다. 오후 4시 회의가 있을 예정이니, 꼭 참석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전화해 오후 참석을 요청한다는 건 참 급박하다는 표현이며, 중요한 회의라는 이야기다. 공중화장실 3남매에 대한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회의는 시작됐다.



 일명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보호를 위한 우리 시 일제조사 추진계획’회의였다.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초수급자 등 기존 복지대상자 이외에 지자체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 극빈계층을 점검하고 보호 방안을 강구하라는 지시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 회의는 일선 현장에서 가동할 수 있는 여력을 최대한 동원해 돌봄이 필요한 대상을 찾아내는데 주력하자는 내용이었다.



 천안시에서도 부시장을 단장으로 행정, 경찰, 복지관련 단체 등을 포함한 추진단을 구성하고 읍·면·동에서는 추진팀을 구성, 다음 달 15일까지 행정기관 직접조사와 시민 신고에 의한 조사를 펴기로 했다. 이 조사를 통해 버려진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소외자를 찾아내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복지사각지대가 어제 오늘 이야기도, 급작스런 일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호들갑 떠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 기왕 이렇게 시작한 이상 제대로 된 조사와 처방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서 사각(死角)과 돌봄이란 말이 새삼 복지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사각이란 어느 각도에서도 보이지 않는 범위로,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테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 사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우리가 사는 어느 곳에든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과 행복의 사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돌봄도 마찬가지다. 돌봄(care)은 어원상 카라(kara)에서 왔는데, 그것은 몹시 슬퍼서 탄식함이라는 뜻이다. 돌봄의 기초적인 의미는 ‘애도하다, 슬픔을 표현하다, 함께 울부짖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의 배경을 알면 더 충격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돌봄이 약자를 향한 강자의 태도, 힘없는 이를 향한 힘 있는 이의 태도, 못 가진 이를 향한 가진 이의 태도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그 아픔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불편해 한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약함과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것은 돌보는 것, 고통에 참여하는 것, 고난 속에서 함께 책임지고 나누는 것이다.



 사회발전에 따라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복지욕구에 국가가 일일이 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비록 맞춤형 복지가 제기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복지사각지대는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한 세계는 이런 현실의 요구와 부합되지 않는 관료적 처방이 이어져 왔다.



 현재 우리사회 최후의 사회안전망이자, 사실상 유일한 사회안전망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사각지대 규모는 적어도 100만명이 넘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한다. 화장실 3남매처럼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비수급 빈곤층은 아무런 사회적 보호장치 없이 빈곤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기본권으로서의 필수적, 기초적 복지서비스로부터의 배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예산이며 정책, 공공부조의 개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때임엔 틀림없다.



 전국적으로 시작된 이 조사와 처방이 관료적 결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공공부조의 개혁과 복지 안정망의 확대로 이어질지 매우 궁금하다. 돌보는 것, 고통에 참여하는 것, 고난 속에서 함께 책임지고 나누는 돌봄의 근본을 회복하는, 그래서 당사자들에게 깊은 상처가 아닌 마음과 행복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여정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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