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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야생화, 그 생명의 존귀함

중앙일보 2011.05.31 00:18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수정
경기대교수 범죄심리학




몇 주 전 지인을 따라 계획에도 없던 꽃구경을 가게 되었다. 물론 일 때문에 만난 터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시 들른 것이었지만, 낮은 산자락 비닐하우스 안에서 꽃들은 쌀쌀한 봄바람을 가르며 경쟁이라도 하듯 옹기종기 피어나고 있었다. 으레 ‘꽃’이라고 하면 화려할 것이기에 나도 수선화나 튤립 정도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수도 없이 많은 이 땅의 야생화들은 나의 기대를 보기 좋게 저버렸다. 흐드러진 울긋불긋함 대신 은은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은 글자 그대로 우리 민족을 닮아 있었다. 만일 화원이 아닌 자연에서 만났더라면 그야말로 잡초 취급을 받았을 그들, 나는 지인 덕분에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조그마한 화분에 옮겨 심은 야생화를 선물로 받았다. 틀림없이 그들의 이름을 듣기는 했으나 지금에 와서는 그중 하나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들어도 이름조차 외워지지 않는 꽃, 그래서 야생화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돌 틈새, 넝쿨 더미 사이에서 조그맣게 머리를 내밀고 있던,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망울들은 틀림없이 감동이었다.



 최근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연이어 터졌다. 한동안 명문대 학생들이 줄지어 목숨을 끊더니, 최근에는 방송인과 연예인이 잇따라 자살했다. 이들의 공통점이란 모두 인생의 정점에서 성취감을 만끽했다가 일시적인 침체기를 맞았다는 것인데, 바로 그 추락의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많았어야 하는 그들, 무엇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틀림이 없는 점은 아마도 삶이라는 것이 더 이상은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범인들은 평생 노력해도 도달하기 힘든 위치에 있었던 그들의 죽음은, 그러나 세인들로부터 공감을 얻기 힘든 면이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이 자살의 이유를 묻는 것이리라.



 갑자기 사춘기를 뒤늦게 앓았던 딸이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개인의 불행이나 절망은 상대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아무리 혜택을 많이 받은 환경에서 살더라도 본인이 느끼는 불행이나 절망의 깊이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물론 이해가 잘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마음의 고통이 크다는 점은 대충 짐작이 되었다.



 그래도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 것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잠시 동안이나마 생명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삶이 꼭 빛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화려한 꽃잎과 흐드러진 향기가 아니더라도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봄마다 얼음을 헤치고 싹을 돋우는 야생화도 있지 않은가. 누구의 주목도 갈채도 받지 않고서 조그만 꽃잎을 틔우는 야생화의 생명력을 우리의 젊은이들도 배웠으면 한다. 그러고는 깨닫기를 기원해 본다. 그들의 존재가 우리 중 누군에겐가는 위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그들이 절망하고 있는 그 이유조차도 우리 중 누구에겐가는 동경할 만한 것일 수 있음을. 모두 잠시 동안 생명의 치열함을 되새겨 보자. 보잘것없는 야생화처럼.



이수정 경기대교수 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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