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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재방송하려고 1년을 보냈나

중앙일보 2011.05.31 00:15 종합 34면 지면보기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영락없는 재방송이다. 서울보증보험 사장 공모 말이다.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주요 등장인물, 그리고 그들이 잡고 있는 줄이나 ‘빽’이 그렇다. 2010년 6월이었다. 진행 중이던 이 회사 사장 공모는 낙하산 논란으로 무산됐다. 곧 이은 2차 공모에도 잡음이 많았다. 결국 방영민 사장의 1년 ‘조건부 연임’으로 마무리됐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낙하산 논란의 핵심은 이 회사 정연길 감사였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동지상고 동창이다. 그래서 ‘MB인맥 심기’라는 음모설이 무성했다. 그가 올해도 사장 자리에 재도전했다고 한다. 결국 그를 위한 ‘맞춤형 공모’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금융가엔 널리 퍼져 있다. 그의 임기가 6월이니, 그에 맞춰 지난해 방 사장의 임기를 정했다는 것이다.



 정 감사 외엔 재무관료 출신이 한 그룹, 서울보증보험 등 보험사 출신이 또 한 그룹을 이룬다. 이 가운데엔 지난해 탈락자들도 상당수 있다. 1년 전엔 사장감이 아니었던 분들이 1년 만에 갑자기 적임자가 될 수도 있는 걸까. 그게 가능하다면 1년 전의 심사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재도전에 나선 분들 역시 지난해 심사에 승복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나온 것 아닐까.



 이를 두고 낙하산이건 아니건 전문성과 능력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문성이나 능력이란 잣대도 객관적인 게 아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결정권자는 자신의 의중에 안 들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는다. 반대로 낙하산 인사를 하면서도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형식적 사장공모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기합리화다. 하기야 이런 인사가 어디 이번 정권의 전매특허인가. 지난 정권에서도 청와대가 마땅찮아 하는 바람에 재공모·재재공모를 한 공기업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어서일까. 서울보증보험의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이 회사 노조의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가관이다. 현 사장은 물론 사장 응모자들에 대한 인신공격이 많다. 게시판 내용대로라면 아무도 사장감이 없다. 또 누구누구는 아무개 라인이라는 식의 분열상을 꼬집는 내부 비판도 있다. 직원들의 반응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이런 회사 사장이 무슨 리더십을 발휘하겠나 싶을 정도다. 이를 노조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그렇게 만든 청와대·정부 책임도 크다.



 서울보증보험 사장 인선은 이 회사 내부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다. 7월 이후 줄줄이 이어질 금융공기업 사장 인선의 중요한 좌표가 된다. 산은지주가 추진하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인수 작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에 금융권의 우려대로 낙하산 인사로 낙착될 경우 특히 그렇다. ‘정부 주도의 메가뱅크란 것도 결국 대형 낙하산 기지를 만들려는 술책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서울보증보험의 경영이 아무나 해도 될 만큼 녹록지는 않다는 점이다. 당장 이익이 많이 난다고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게 보증보험이다. 경기침체로 보증을 받아간 기업들이 부실화하면 보험사는 즉각 충격을 받는다. 또 이 회사의 새 사장은 일상적인 영업 외에 시장개방과 민영화라는 과제를 안게 된다. 정부만 바라봐도 안 되고, 실무적인 관점만 고집해도 안 되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랜 통찰과 식견이 없다면 사장 노릇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서울보증보험이 어떤 회사인가. 1998년 부실해진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의 합병으로 설립됐다. 그 뒤 정부가 1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냈다. 그래서 이 회사의 대주주는 지분 93.85%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다. 즉 정부가 주인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납세자가 주인이다. 이 점만 분명히 하면 결론은 쉽게 나온다. 납세자들이 납득할 만한 인사를 하라는 것이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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