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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바람

중앙일보 2011.05.31 00:14 종합 35면 지면보기








하늬바람, 참 고운 말이다. 서쪽이나 서북쪽에서 부는 바람을 뜻한다. 갈바람이 동의어다. 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의 준말인데 서풍을 의미한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고 할 때 마파람은 남풍이다. 동풍은 샛바람이라 한다. 매섭게 부는 바람은 된바람, 즉 북풍을 의미한다. 주로 뱃사람들이 쓰던 말인데 한글의 맛이 오롯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데…’. 세종 때 함경도에 육진(六鎭)을 개척하며 북벌정책을 수행한 김종서는 변방의 겨울밤을 단 몇 자로 장엄하게 표현했다. 삭풍 역시 광막풍(廣漠風)·호풍(胡風)과 더불어 북풍을 뜻한다. 자연현상 가운데 바람만큼 이름과 종류가 다양한 것도 없다.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이 해풍인데 주로 낮에 분다. 밤에 방향이 바뀌면 육풍이 된다. 낮에 골짜기에서 산꼭대기를 향해 부는 바람은 곡풍(谷風), 밤에 방향이 바뀌면 산풍(山風)이다. 실바람·남실바람·산들바람·건들바람은 다 부드러운 바람이다.



 착한 바람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토네이도(tornado)는 520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킬러 윈드(killer wind)’라 명명해도 무방할 듯하다. 수직으로 쌓여 커다란 탑처럼 보이는 구름인 적란운(積亂雲)의 숨은 열이 구름 속의 공기를 데워 강한 상승기류를 만들어 낸다. 이 기류는 상층부에서는 천천히 회전하지만 아래쪽으로 발달하면서 깔때기 모양이 되는데 이때 풍속이 엄청나다. 강력한 놈은 최대 풍속이 시속 500㎞에 달해 지상의 모든 것을 공중으로 감아올렸다 내동댕이친다. 1925년 3월 18일 미국 미주리주에서 발생한 놈은 3시간 반 동안 352㎞를 이동하며 695명의 사망자와 2027명의 부상자를 냈다. 국내에선 동해안에서 관측되는데 용이 승천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용오름 현상으로 불린다.



 풍속이 갑자기 빨라지고 방향도 휙휙 변하는 돌풍(gust)은 간판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다.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 저기압 태풍(typhoon)은 해마다 이 땅에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준다. 태풍보다 조금 약한 것이 폭풍(storm, tempest)이다. 그런데 요즘 이 단어가 네티즌에게 인기다. 폭풍성장·폭풍애교·폭풍감량과 같이 대단하다, 빠르다는 의미로 쓰인다. 누가 특정 단어를 먼저 쓰고, 그게 어떻게 폭풍처럼 번져 가는지 온라인 언어 생태계가 궁금하다.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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