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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대한민국 가치

중앙일보 2011.05.31 00:13 종합 35면 지면보기






문창극
대기자




한나라당을 보면 어지럽다. 지난 보선은 분명히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무엇을 어떻게 변화할지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반값 등록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등록금을 낮추어 준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문제는 등록금 차원이 아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돼 청년 실업이 넘쳐난다.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을 하는 경우라도 불과 20여 년이 되지 않아 퇴직 걱정을 하게 되어 있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 것이며 일자리에 맞는 교육은 어떻게 시키느냐다. 단순히 등록금 깎아주겠다는 것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시간은 걸리지만 근본적인 접근을 해야 할 사안이다.



 증세냐 감세냐도 복잡한 문제다. 보수는 감세, 진보는 증세라는 공식에 따라 움직일 수 없다. 영국의 캐머런 정부는 보수당이지만 세금은 올리고 정부 지출은 줄이는 긴축정책을 쓰고 있다. 자연히 복지·교육 프로그램을 개혁하고 건강보험 등에는 주름이 갈 수밖에 없다. 대신 나라 재정은 빚을 줄여 정상화시키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증세를 하면서 복지를 늘리자는 진보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자 한나라당 내에서 남북대화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중국에 종속되면 통일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게 이유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흐지부지하고 이번에도 또 상황에 밀려 대화에 매달려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변화 자체에만 매달리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혼란스러운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바꾸라니까 주춧돌까지 빼고, 기둥까지 뽑아 집을 허물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왜 국민들이 절대적인 지지로 한나라당 정권을 지지했느냐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두 번의 진보정권에 의해 대한민국의 가치가 허물어져 가고 있는 데 대한 불안감이었다. 반면 이번 보선의 결과는 이러한 가치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열매를 소수가 독점하는 데에서 나온 반발이었다. 한나라당은 그 메시지를 단순히 ‘진보 쪽으로 가라’고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치는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는 것이다. 지금의 야당이 미심쩍은 것은 진보정책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천안함 시비나 한·미 FTA 반대가 그 증거다. 야당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지키기로 한다면 진보든 보수든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대한민국의 가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 탄생해서 지금의 나라를 만들어낸 정신과 문화, 그리고 역사다. 오늘의 우리 됨을 있게 만든 뿌리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땀 흘려 일하고 자녀들을 열심히 교육시켰다. 근검절약으로 개인과 나라의 부를 쌓아왔다. 비록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온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 자립하는 것을 가장 보람된 일로 여겼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비관주의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신봉한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깨끗하고 공정한 정부를 꿈꿔왔다. 이런 가치를 북한까지 확장하기 위해 통일도 필요한 것이다. 이런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의 진정한 우방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치를 지키는 데 무엇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가. 보수라는 이념인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늘의 우리를 만든 이 가치로 인해 가장 혜택을 누린 장본인들의 일탈이 그 걸림돌이다. 재벌이 그렇고 관료들이 그렇다. 양극화의 문제, 부패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의 희생 없이 재벌로 성장할 수 없었고, 나라 없는 공직자란 있을 수 없다. 가치의 소중함을 알려면 구성원 모두가 그 값어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혜택을 누린 모든 계층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누는 삶, 공정한 삶을 살지 못하면 결국에는 강제로 빼앗기는 삶, 버림받는 삶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번 잣대가 기울어지면 다시 바로 세우기가 어렵다. 둑이 무너진 뒤에는 손을 쓸 수가 없다. 민심에는 쏠림현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키기 위해서는 포기할 것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한나라당 노선투쟁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위기는 한나라당만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다. 이 나라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도 힘을 합쳐야 한다.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가 혜성같이 등장하겠다면 오산이다. 재벌과 공무원들도 각성해야 한다.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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