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 기자 VS 이 부장 ┃ ③ 밥

중앙일보 2011.05.31 00:07 경제 18면 지면보기








 이번엔 ‘밥’이다. 50대 이 부장은 ‘한국인은 밥심(心)’이라고 주장한다. 갓 지은 뜨끈한 밥을 먹어야 먹은 것 같은 느낌은 한국인의 본능이라며, 빵이나 떡으로 끼니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20대 윤 기자는 입맛이 다양해지고 간편한 식사를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입장을 대변한다.



 사진=김성룡 기자



달콤한 디저트로 끼니 해결해요

혼자 먹어도 괜찮고 시간도 아끼죠




며칠 전 점심시간에 친구들을 만났어요. 서울 한남동에 있는 디저트 갤러리 ‘패션5’에서요. 우리 셋은 알록달록 색깔도 예쁘고 향기도 좋고 달콤새콤한 딸기크레이프·블루베리마운틴·녹차초코큐브를 먹으며 밀린 수다를 떨었죠.



 저는 디저트로 끼니를 대신하는 ‘디저트족(族)’이에요. 달콤한 디저트를 포기하지 못 하겠으니, 밥 대신 디저트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거죠. 밥 한 공기가 300㎉이고 타르트 한 개가 100~150㎉이니까 밥 대신 타르트 한두 개가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저와 같은 디저트족의 지론이랍니다. 밥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향긋하고 달콤한 것이 기분도 산뜻하게 해주죠. 나름 근거도 있어요. 설탕이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호르몬의 생성을 억제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거든요.









다양한 디저트와 브런치 메뉴를 ‘엣지’있게 즐길 수 있는 ‘패션5’.






 제가 빵과 음료로 끼니를 해결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혹시 ‘코피스족(族)’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커피(coffee)’와 ‘사무실(office)’의 합성어로, 카페에서 일이나 공부를 하면서 케이크·샌드위치·머핀 등 사이드 메뉴와 커피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을 말하죠.



 코피스족의 등장은 이 시대의 냉혹한 생존경쟁 탓이 아닌가 싶어요. 이 시대 젊은이의 불안감과 조급함이 스스로 코스피족으로 만들어 버린 거겠죠. 우리 2030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늘 쫓기듯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어요.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죠.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했어요. 취업을 위한 스터디 두세 개는 기본이었으니까요. 취업을 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매일매일 기획안 작성하고 프레젠테이션 하는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동기와 후배들한테 뒤지지 않으려면 자기 계발도 소홀할 수 없어요. 그러니 한가롭게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하며 제때에 밥을 먹는다는 건 특별한 날 큰 맘 먹지 않고는 좀처럼 힘든 일이더라고요.



 이렇게 바쁘고 외로운 코피스족은 나 홀로 식사가 대부분이죠.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도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런 불편한 시선으로부터도 ‘밥집’보다는 카페가 훨씬 자유로워요. 밥집에서는 식사를 하며 서류를 보거나 노트북 자판을 치는 게 힘들기도 하고요. 코피스족이 늘어나면서 카페마다 사이드 메뉴도 풍성해졌어요. 밀가루 반죽에 굵은 소금을 뿌려 구워낸 프레즐은 하나만 먹어도 든든해요. 빵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수프 종류도 다양해졌고요.



 이어령 선생님은 ‘빵과 밥’이라는 수필에서 “빵의 문화는 개인주의 문화이며 정복의 문화이며 활동의 문화이며 상업의 문화이다. 밥의 문화는 한 솥의 문화이다”라고 하셨지요. 먹기 직전 지어야 하는 밥에 비해 빵은 미리 만들어진 것을 살 수 있고, 들고 다니며 먹을 수도 있어 전투식량으로 편리하다고요. 결국 문화와 생활이 입맛을 바꾸고, 식사하는 모습도 변화시키는 것 같아요.



 그런데요, 패션5에서 디저트 점심을 즐긴 그날 저녁, 집에 들어서니까 구수한 잡곡밥 냄새가 그득한 거예요. 확 입맛이 돌며 갓 지은 따끈한 밥에 죽순 넣고 끓인 된장찌개, 잘 익은 총각김치가 확 당기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윤서현 기자









‘쥬디스 프레즐’은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만들어 굽는다. 갈릭페페로니애플시나몬 등 20여 가지 종류의 프레즐이 있다.



밥 아니어도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곳



● 패션5(서울 한남동 729-74, 02-2071-9505)=딸기크레이프 6000원, 블루베리마운틴 3800원, 녹차초코큐브 3000원.



● 컵앤볼(서울 이태원동 57-16, 070-4190-3642)=프로방스야채수프(레귤러)5600원·(라지)7600원.



● 쥬디스 프레즐(서울 석촌동 J타워 1층, 02-417-2806)=프레즐 3000원~3500원, 아메리카노 3000원.





한국인은 밥심인데 밥을 먹어야지

빵이나 떡은 어쩐지 허전하잖아




지난주 출퇴근 길엔 이팝나무 꽃이 한창이더군. 그 꽃을 볼 때마다 서글픔 같은 게 느껴진다네. 하얀 꽃잎을 보며 이밥(쌀밥)을 연상하던 옛 사람들이 생각나서지. 이 꽃은 왜 하필 이때 피는지. 양식은 바닥났는데 보리는 팼으나 여물지 않았고, 들판에 할 일은 늘고 해는 자꾸 길어지는 이때, 보릿고개에 말이야. 때맞춰 핀 하얀 이팝꽃을 보면 하얀 쌀밥 한 그릇이 얼마나 간절했겠나.









‘가마솥 이천쌀밥집’은 식사를 주문하면 작은 무쇠솥에 쌀밥을 안쳐 준다. 식탁에서 밥을 직접 지어 먹는 게 이색적이다.






  그때는 쌀이 그야말로 금쪽같았지. 쌀도 귀한데 끼니는 허구한 날 밥뿐이던 시절, 할머니는 노느라 때를 잊은 손자를 걱정하며 말씀하셨지. “지금 안 먹으면 평생 이 끼니 못 찾아먹는다.” 일찍이 이 말이 몸에 배 끼니는 거르면 안 된다는 게 철칙이 됐어. 그것도 꼭 밥이어야 하지. 백 보 양보해 국수까지는 괜찮아. 그러나 빵이나 떡은 먹어도 어쩐지 허전해. 밥을 먹어야 먹은 것 같은 ‘본능’이 몸과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거야.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끼니 본능에 따르면 내가 좋아하는 밥은 콩·팥 같은 잡곡 적당히 두어 가마솥에 장작불 때서 갓 지은 밥이야. 탄력 있는 밥알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구수한 향은 깊지. 이런 밥이면 잘 익은 김치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



  시골 방앗간 집 셋째 아들로 자란 나는 밥맛에 아주 민감하다네. 그런데 밖에서 사먹는 끼니가 더 많다 보니 밥다운 밥을 챙겨먹기가 쉽지 않아. 식당 밥은 대개 온장고에서 너무 오래 묵어 밥알이 하나같이 성질이 잔뜩 나 있어. 그럴 때 내가 잊지 못하는 밥이 있네. 두 가지 소개하네.



  하나는 20년 전 이맘때 지리산 임걸령 샘터에서 얻어먹은 밥. 새벽 등산 중이었는데 산나물 뜯던 동네 어르신들이 아침을 먹더군. 큰 밥통에 가득 담아온 밥과 쌈장이 차림의 전부였어. 잠시 후 누군가 이슬 젖은 산나물을 한 아름 안고 숲에서 나오더군. 그 산나물 서너 가지 포개서 밥을 싸 먹는데 나는 두 시간쯤 전에 밥을 먹었건만 어쩌면 그리도 맛나보이던지. 넋 놓고 바라봤더니 불쌍해 보였나 할머니가 한 쌈 싸서 권하는 거야. 산나물은 향기롭고, 쌈장 맛은 진하면서 깊고, 거기에 고슬고슬한 밥은 있는 듯 없는 듯 어우러지는데 정말 맛있더군. 염치 불구하고 끼어들어 몇 쌈 더 얻어먹었지.



  또 하나는 전북 익산의 외딴 음식점 동일가든(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51, 063-836-7599)의 밥이야. 들어서자 주인이 대뜸 “어디 가서 20분 놀다 오세요” 하는 거야. 손님이 올 때마다 밥을 새로 하거든. 이 집은 발효음식 전문점이야. 3년 묵은 김치는 명함도 못 내지. 11년 숙성 된장으로 끓인 찌개, 9년 된 장아찌, 7년 묵은 깻잎과 김치, 이런 식이야. 슬로푸드의 본당이라 할 만하지. 주 메뉴는 참게장인데, 게를 잘게 찢고 제 간장에 부추·당근채·들기름·깨를 넣고 무쳐 밥을 비벼 먹는 거야. 주인 아저씨는 밥을 두 공기씩 준다네. 추가 주문 안 했다고 하니 대답 왈 “더 달라는 말씀은 마세요.” 먹어보면 그 말 이해되지. 뒤에 나오는 누룽지도 다 먹게 돼.



  그런데 말일세, 자네도 그러나? 우리는 정떨어지고 상대하기 싫다는 말을 “밥맛 없다”고 하는데 요즘 젊은이는 “밥맛이다” 그러더군. 이 놀라운 가치의 전복…. 밥맛이 그렇게 싫어진 걸까.



  이택희 피플·위크앤 데스크









‘일미식당’의 청국장백반.



갓 지은 밥이 있는 식당



● 봉화용두식당(서울 등촌1동 649-14, 02-3661-1800)=송이돌솥밥 2만5000원, 능이돌솥밥 1만5000원



● 남산누나네집(서울 이태원동 258-40, 02-797-8489)=예약 필수. 부대전골 1만5000~2만원



● 가마솥 이천쌀밥집(서울 관철동 177, 02-725-9729)=즉석에서 밥 지어 먹는 집. 가마솥 한정식 1만원



● 일미식당(서울 낙원동 284-6, 02-766-6588)=청국장백반·김치찌개 6000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