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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뭘 더 원해 ?

중앙일보 2011.05.28 00:10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뭘 더 원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 중인 연극 ‘키친’의 마지막 대사다. 레스토랑의 젊은 조리사 피터의 난동으로 엉망이 된 주방에서 늙은 주인 마랑고는 이렇게 토해내듯 말한다. “내가 일을 줬잖어. 돈도 적잖게 줬잖어. 원하는 대로 먹게 해줬잖어. 근데 왜 이러는 건데? 왜 내 세상을 정지시키는 건데….” 하지만 주방 안의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말에 수긍해서가 아니었다. 서로 말이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른바 ‘사회극’의 정수를 보여주는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 원작의 이 연극은 195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그 후 반세기가 훌쩍 넘었지만 이 작품이 던지는 그 벌거벗은 물음은 지금 한국에서 더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린다. “뭘 더 원해?”



 # 피스톤 링 하나로 완성차업계를 사실상 올스톱 상태로 몰고 갔던 유성기업의 노조 파업은 결국 공권력 투입으로 상황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닌 듯싶다. 사실 ‘연봉 7000만원’ 운운하며 관리직보다 더 높게 받는데 “뭘 더 원해?” 하는 식의 물음은 신속한 공권력 투입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됐다. 물론 “뭘 더 원해?”란 물음에 유성기업 노조원들은 ‘시급제의 월급제 전환’과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이라고 한결같이 말했다. 하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되돌아온 것은 공권력의 투입이었다.



 # 유성기업 노조를 편들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들이 뭘 더 원했는지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밝혀둘 필요는 있다고 본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그동안 주야간 교대근무 방식으로 일주일마다 낮과 밤을 바꿔 살아왔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면 누구나 낮과 밤이 바뀌어 시차적응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마련이다. 그런 시차 부적응을 일 년 내내 달고 산다고 생각해보라. 아무리 정신차려 살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낮과 밤을 일주일 단위로 바꾸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삶에 대한 그리고 우리 몸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이다.



 # 우리는 그런 폭력적인 노동강도 속에서 이만큼의 번영을 일궈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가장 기본적인 잠자고 쉴 권리마저 생산과 번영이란 이름 아래 제한하고 구속할 순 없다. 그래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제껏 익숙했던 산업적·경제적 관행을 더 이상 고집할 순 없다. 특히 완성차업계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산업현장에서 이 문제는 가장 첨예한 현재적·미래적 이슈가 될 것이다. 이젠 ‘일’이 아니라 ‘쉼’이 쟁점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된다, 안 된다고 노사 쌍방이 서로를 압박하며 으르렁댈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타협점과 도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 주간 연속2교대제를 도입하면 당연히 노동시간이 줄어들다. 노측에선 그 줄어든 노동시간에 따른 임금보전을 위해 시급제를 월급제로 전환할 것을 동시에 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협상과 타협이 이뤄지려면 노동계 역시 줄어드는 임금을 감내할 자세가 전제돼야 한다. ‘쉼’과 ‘돈’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하면 타협점은 도출되기 어렵다. 사측 역시 기존의 관행화된 근무제도만 고집하지 말고 ‘주간연속2교대제’나 ‘4조2교대제’ 등 다양하게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4조2교대제는 유한킴벌리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해 그 성과가 어느 정도 검증돼 포스코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또 일부이긴 하지만 현대차 부품납품업체인 두원정공 노사는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기 위해 5년 이상 노동시간과 임금문제 등을 협의해 현재는 합의하에 전면시행하고 있다.



 # “일 주고 돈 주고 먹을 거 주는데 뭘 더 원해?”라고 물으면 더 이상 아무 말하지 못하던 시절은 지났다. 단지 다시 일하기 위해 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꾸리며 쉬고 싶은, 그래서 좀 더 사람같이 살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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