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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조롱받는 김정일의 중국 밀행

중앙일보 2011.05.28 00:09 종합 30면 지면보기






정용환
홍콩 특파원




24일 비가 갠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의 아침은 맑고 깨끗했다. 이틀 전 비 오는 검은 밤, 양저우에 들어온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떠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양저우의 중심대로는 교통 관제에 들어갔다. 20분 가까이 교통 흐름이 끊기자 운전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도대체 언제 지나가기에 이렇게 세워 놓느냐”며 핏대를 올리는 자가용 운전자들의 볼멘소리. 교통경찰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무전기 스위치만 만지작거린다.



 지루했던 기다림, 뻥 뚫린 신작로,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 34대로 구성된 차량 행렬은 대로를 시원하게 질주했다. 반면 대로로 통하는 샛길은 아수라장이었다. 관제를 피해 이면도로로 몰린 차량들이 엉켜버린 것이다. 접촉 사고로 싸우는 사람들의 고성과 차량의 경적이 쏟아내는 소음이 종횡으로 난무했다. 옆자리의 택시 기사는 “차 없는 새벽에 가든지 아니면 미리 알려줘 차를 놓고 나오게 하든지 해야지”라며 혀를 찼다. “김정일 때문”이라며 욕설을 쏟아내는 행인도 보였다. 짜증이 폭발하면 민심은 이렇게 공격적으로 변하는 법이다. 혈맹의 끈끈함도 기억 저편의 일이다. 이틀 전 그가 전용열차로 양저우 역사로 들어올 때도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승객들은 발차 시간이 넘었는데도 못 가게 막는 역원(驛員)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중국의 국내선 항공기는 걸핏하면 30분씩 늦게 출발하고 명절인 춘절(春節·설 명절) 때는 기차가 한나절 이상 연착해도 꿋꿋이 참는 사람들이 북한 지도자의 마중 행사에는 “왠 민폐냐”며 짜증스러워했다.



 장막 뒤에 숨어 움직이는 이 북한의 권력자가 중국으로 나올 때면 홍콩에서 올라와 창춘·다롄·선양·하얼빈·베이징·난징·단둥 등지를 쫓아다녔다. 어떤 땐 행선지를 맞혀 미리 가서 기다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중국 당국의 철통 보안에 막혀 김정일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게 된다. 열린 사회에선 이런 잠행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민심이 손 놓고 보지 않는다. 절대권력에 맛들인 북한 1인자. 그의 입맛을 맞춰주는 중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경제와 군사·첨단 우주항공 분야에서 G2로 성장한 중국에 이런 구시대적 유물이 공존한다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중국 신세대들은 이런 부자연스러운 현실을 가볍게 비틀었다. 난징에서 은밀히 열린 북·중 지도자들의 연회장 현장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발가벗겨졌다. 또 김정일의 전용차량 옆자리에 앉은 비밀스러운 여인도 만천하에 공개됐다. 가위 ‘난징대첩’으로 불릴 만한 사건이다. 이 나라에 불기 시작한 변화의 바람을 시각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통제하고 차단하려 해도 일단 소셜 미디어의 물결 속에 들어가면 시간의 문제일 뿐 그 흐름은 거스르기 어렵다. 중국은 갈수록 밀행이 어려운 나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예전 같지 않은 중국의 세태 변화를 접하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가는 절대권력자의 심정은 어떨까.



정용환 홍콩 특파원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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