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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혹은 광기 … 알렉산더 매퀸을 추억하다

중앙일보 2011.05.25 00:25 경제 18면 지면보기



[style&]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서 7월까지 회고전 열어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린 지난달 29일 영국 윌리엄 윈저 왕자와 캐서린(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전 세계 신부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캐서린의 드레스였다. 단순하면서도 여성미를 살린 우아한 디자인이 세계인의 탄성을 자아냈다.



드레스를 디자인한 사라 버턴(Sarah Burton)도 덩달아 스타가 됐다. 버턴은 40세에 자살로 요절한 영국의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Alexander McQueen)과 14년간 함께 일한 그의 ‘오른팔’이었다. 현재 매퀸의 이름을 딴 패션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마침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매퀸을 추모하는 ‘알렉산더 매퀸: 원시적 아름다움(Savage Beauty)’이란 전시회를 7월까지 열어 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매퀸은 생전에 ‘패션계의 악동’ 혹은 ‘훌리건(광적인 축구팬)’으로 불렸다.



“내 패션쇼를 보고 관객이 구역질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다.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그의 패션쇼는 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2월 11일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그를 패션계가 잊지 못하는 이유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 사진=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매퀸이 1997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발표한 ‘이 세상은 어디나 정글(It’s a Jungle Out There)이란 이름의 작품’. 갈색의 조랑말 가죽으로 만든 재킷 어깨에 영양의 뿔을 달았다. 여기에 이 재킷의 거친 느낌을 살려 주는 염색한 데님을 짝지었다.



지난 2일 열린 전시회 갈라쇼에는 뉴욕의 패션계 거물과 스타가 총출동했다.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 브랜드 ‘알렉산더 맥퀸’의 사장 프란시스 앙리 피노와 수석디자이너 버턴은 물론 매퀸 옷의 매니어였던 마돈나, 레이디 가가, 비욘세, 리한나, 지젤 번천, 제니퍼 로페즈, 제시카 알바, 나오미 캠벨, 데미 무어 등이 참석했다. 관람객 반응도 뜨겁다. 평일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의상연구소(Costume Institute)의 앤드루 볼턴 큐레이터는 “영국 런던의 매퀸 박물관은 물론 개인 소장품까지 모아 그의 대학원 졸업 작품부터 숨진 직후 열린 마지막 패션쇼 작품까지 망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무도 가 보지 못한 신천지로 매퀸을 끊임없이 이끌었던 건 사랑이었다”며 “그에게 패션은 고통과 환희라는 사랑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고 말했다.



전시관은 6개의 주제로 나뉘어 있다. 첫 주제인 ‘낭만주의 마인드’에선 초기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92년 영국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학교 졸업작품 ‘잭 더 리플이 사냥감을 쫓는다’가 대표적이다. ‘잭 더 리플’은 1880년대를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마다. 창녀만 골라 죽였다. 거기서 영감을 얻은 매퀸은 드레스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심어 넣었다. 해골에 집착하는 등 그의 엽기적인 취향이 이때부터 엿보인다.



그의 졸업작품은 당시 패션계의 큰손이자 유명 스타일리스트였던 이사벨라 블로가 몽땅 사들여 화제가 됐다. 이후 블로는 매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2007년 블로가 음독자살하자 매퀸의 우울증은 악화했다. 설상가상 3년 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매퀸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 뒤를 따랐다. 엉덩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뒷단이 푹 파인 ‘범스터(bumster) 스커트’는 1990년대 그가 유행시킨 히트작이다.



두 번째 주제 ‘낭만주의적 고딕’ 전시실(③)은 어둠침침한 18~19세기 런던의 뒷골목을 연상시킨다. 매퀸은 늘 죽음에 매력을 느꼈다. 검은색 오리털로 만든 드레스(⑥)가 눈길을 잡아끈다. 드레스가 연상시키는 까마귀는 낭만주의에서 죽음을 상징한다. 1999년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올림픽 육상선수 에이미 뮬린스에게 입혔던 가죽드레스(②)도 인상적이다. 실크스커트 밑으로 나온 두 다리는 가죽부츠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의족이었다.














‘낭만주의적 민족주의’에선 그의 고향 스코틀랜드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 나온다. 스코틀랜드 전통인 격자무늬가 주를 이룬다. 바로 옆 ‘낭만주의적 이국주의’에선 반대로 외국 패션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보여 준다. 특히 기모노는 그가 평생 재해석을 시도한 연구 주제였다(⑤).



‘낭만주의적 원시주의’는 아프리카와 아마존 원시부족에서 영감을 얻은 패션이다. 2003년 선보인 ‘굴(Oyster) 드레스’는 이번 전시작의 백미 중 하나다(①). 수만 겹의 실크를 겹쳐 마치 야생 굴의 표면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낭만주의적 자연주의’에선 그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언젠가 남북극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 지구상에서 육지는 사라진다. 그럼 인간은 다시 물속에서 살 수 있도록 ‘역진화’할 수밖에 없다. ‘해파리 앙상블(④)’은 그런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생화로 만든 드레스 ‘사라반드(스페인 춤)’도 자연주의 작품의 대표작이다.













알렉산더 매퀸=1969년 영국 런던에서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누나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 줬을 정도로 디자인에 소질을 보였다. 16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런던 새빌로가의 고급 양복점 ‘기브스 앤 호크스’에서 견습생으로 재단 일을 배웠다. 그 시절 그의 고객 중엔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 찰스 윈저 왕세자가 포함돼 있다. 패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학교에 재단강사로 들어갔다가 학장의 눈에 띄어 장학생으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92년 그의 졸업작품을 본 런던 패션계의 거물 이사벨라 블로의 후원으로 패션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96년 루이뷔통(LVMH) 베르나르드 아르노 사장이 경력 4년차 매퀸을 프랑스의 고급 패션브랜드 지방시의 수석디자이너로 전격 발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1년 지방시와 결별하고 구찌그룹과 합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브랜드를 만들었다. 96~2003년 네 차례 영국 최고 디자이너상과 2003년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 올해의 세계 디자이너상을 받았다. 지난해 2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며칠 뒤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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