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칭 2인자 양준혁, 이만수 제치고 ‘최고 레전드’ 꿈

중앙선데이 2011.05.22 02:35 219호 20면 지면보기
이립(而立). 논어 위정편에 따르면 공자는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세웠다고 한다. 1982년 탄생한 프로야구는 올해 30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프로야구 30년을 맞아 여러 이벤트를 준비했다.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10’ 선정도 그중 하나다. 프로야구 창설 당시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었다. 이번 올스타 투표는 30년간 프로야구를 누빈 전설들을 재조명하면서 과거의 꿈과 희망을 추억하는 장으로 남을 듯하다.

‘프로야구 30년의 전설’ 뽑는 팬 투표 중간 결산

레전드 올스타 투표는 야구인(현역 코칭스태프·일구회)과 언론(프로야구 취재 기자단, 중계방송 관계자 등), 그리고 팬이 참여한다. 최종 결과에는 야구인 투표 40%, 언론 투표 30%, 팬 투표 30% 비율로 반영된다. 은퇴 선수만을 대상으로 해 현역인 이승엽(오릭스)·이종범(KIA) 등은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 4월 29일부터 KBO 홈페이지와 네이버에서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팬투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양준혁(42) SBS 해설위원이다. 양준혁은 2차 집계(15일 오후 2시 기준) 결과 총 9만4602표 중 79%인 7만4788표를 획득해 전체 1위에 올랐다. 외야수 부문은 3명까지 투표가 가능하고, 양준혁이 지난해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한 숫자다.

양준혁의 최다 득표는 큰 의미가 있다. 스스로 ‘2인자’였다고 밝힐 만큼 그는 ‘최고의 선수’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양준혁은 프로야구 신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나는 2인자였다.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는 말로 운을 뗐다. 실제로 그는 타격왕 4회 등 11개 타이틀을 따냈지만 리그 최우수선수상(MVP)이나 홈런왕은 차지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18년 동안 묵묵히 한 길을 걸어 최다 홈런(351개)·타점(1389개)·타수(7328개)·안타(2318개)·득점(1299점)·4사구(1380개) 등 각종 타격 부문에서 통산 최다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이제 그를 2인자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훌륭한 선수이기 때문에 그에게 ‘양신(梁神)’이라는 별명이 붙은 건 아니다. 야구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가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프로 입단 전에는 1차 지명을 받지 못하고도 고향팀 삼성에 입단하기 위해 기꺼이 군 입대를 결정해 남들보다 2년 늦게 프로에 뛰어들었다. 1999년 삼성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됐고, 2000년 선수협의회 파동에 휘말려 LG로 떠난 그는 3년 만에 아무런 감정 없이 삼성으로 돌아왔다. 삼성 팬들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결정된 뒤 등번호 10번을 단 덩치 큰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한 땅볼을 치고도 전력질주할 만큼 야구에 집중하는 모습은 다른 팀 팬들도 감동시켰다.

지금도 양준혁은 팬들과 가까운 곳에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각종 강연과 인터뷰, 촬영과 행사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연예인처럼 매니저를 따로 둘 정도다. 물론 TV에서도 여전히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방망이와 글러브 대신 마이크를 잡고 야구 해설을 하고 있다. 이동 때는 늘 스마트폰을 붙잡고 SNS 서비스를 통해 팬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예능 활동 역시 “야구를 홍보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말처럼 그의 눈은 야구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가 팬들이 선정한 최고의 ‘레전드’로 꼽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투수 비중이 높다. 프로야구 30년사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는 누구였을까. 현역을 제외하면 선택지는 둘로 좁혀진다. 최동원과 선동열. 영·호남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동시대에 활약한 두 사람은 세 차례 맞대결에서 1승1무1패를 기록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최고 투수가 누구냐’ 논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둘의 대결을 그린 영화(퍼펙트 게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투표에서는 다소 싱거운 결과가 나올 듯하다.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이 4만7771표를 얻어 1만4301표에 그친 최동원 전 한화 코치를 큰 차이로 앞서 있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은 “두 투수의 기량 차가 크지 않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다만 최동원이 선동열보다 먼저 은퇴했고, 최동원이 뛴 롯데가 한 번 우승(1984년)한 반면 해태는 여러 차례 정상에 올랐던 것이 표 차이를 만들었을 것”이라며 “최근 유입된 팬들은 두 투수의 투구를 보지 못한 경우도 많다. 최동원이 최근 프로야구계를 떠나 있었던 것도 선동열에게 밀린 이유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간집계에서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던 삼성 출신이 4명(양준혁·이만수·장효조·심정수)이나 포지션 1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이만수 SK 2군 감독은 양준혁보다 불과 1090표 적은 7만3698표로 전체 2위에 올라 있다. 팬들이 화끈한 공격야구에 대한 향수를 보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재박 전 LG 감독과 류중일 삼성 감독이 경쟁 중인 유격수 부문도 그런 경향이 드러난다. 공격력에서 다소 우위였던 김 전 감독이 수비가 뛰어났던 류 감독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 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